지금 지구촌은 온통 한일 월드컵으로 들끊고 있다. 과거 어느 대회보다도 절대 강자가 없는 속에서 선수들은 한 손에 천국행, 다른 한 손에는 지옥행 티켓을 쥐고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하고 있다. 전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가 처녀출전한 세네갈에게 덜미를 잡히더니 끝내 골대만 다섯차레 마치고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 밖에도 우승예상국들이 약체로 평가되는 나라들에게 번번히 발목을 잡히곤 하였다.
그럼에도 이 와중에서 우리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비기기만 해도 다행이라던 미국이 예상을 뒤엎고 우승후보인 포르투갈을 꺾었는데도 부시대통령은 선수단앞으로 장하다는 메시지하나 보내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프랑스가 덴마크에게 패하여 예선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는 순간, 세계가 경악을 보이는데도 인천구장에 나온 프랑스 응원단들은 자국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이 두사례는 결국 천국과 지옥사이를 너무 극단으로 떼놓지 않으려는 그들 나름대로 다져진 문화축적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히딩크감독이 우리 대표팀을 맡자마자 국제경기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특히 컨페더레이션스컵 시합에서 프랑스팀에 5:0으로 패하자 단번에 그의 사생활에 시비를 걸었고 능력의 한계를 내걸며 나락으로 밀어뜨린지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런 그가 폴란드를 꺾고 월드컵 사상 첫승을 안기자 일약 영웅으로 떠올라 ‘히딩크식 리더쉽’을 내세우며 천국행 고속열차를 태우고 있다.
매사 그리고 매번 승리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렇듯, 날씨가 그렇듯 어찌 매번 축배를 들고 나날이 청명한 날씨만 볼 수 있겠는가? 과거 프로복서들이 그랬듯 지금도 해외에서 고분분투하고 있는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다. 어쩌다 한번 우승이라도 하면 TV에서는 그의 부모와 친인척은 물론 학교시절의 담임선생과 친구 등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줄줄이 등장해 분장사가 된다.
다행히 그 선수가 계속 우승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금방 외면당하고 만다. 한 때 우리나라 스포츠신문들은 거의 박찬호기사로 도배를 하다시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계가 있는 법, 7:0을 못지키고 무참히 강판당했을때 그곳 언론들은 거의 민족차별에 가까운 혹평을 서슴치 않았다. 그순간 그는 고독의 절정에서, 자신을 하늘높은줄 모르게 떠받쳐주고 있는 고국팬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떠올리며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했던 시절, 근대문학사에서 시보다 차라리 시인을 더 중시했던 전통윤리의 배면을 한번쯤 되짚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천국과 지옥의 낙차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우승했다고 너무 흥분하지 말고 설혹 졌다해도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실망하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자.
각설하고, 오늘밤은 비야흐로 한국 축구가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를 놓고 포르투갈과 격돌한다. 온 국민의 염원대로 이뤄진다면야 그보다 더 좋을수가 없겠으나, 만에 하나 16강행에 실패한다 해도 너무 낙심하지 말자.
그 패배의 아픔을 결코 지옥행으로 유도하지도 말고 비유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우리 나라가 월드컵 공동개최지로 선정되면서부터 우리는 16강행에 앞서 지구촌의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 곳곳에 전해주려는 일념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왔고, 다행히 이 시간까지 그 염원은 별다른 장애없이 진행되고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동안만이라도 우리는 한 민족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글거리는 대 용과로 속에서 어떻게 혀란하게 용틀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한나라의 전통문화와 세계스포츠가 어떻게 눈부시게 조화될 수 있는가를 전 세계에 보여주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것이 16강보다 더 큰 소득일지도 모른다.
결국 천국와 지옥의 거리는 우리가 조절하기에 달려 있다.
/허소라(시인, 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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