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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교수의 판소리 길라잡이] 국극(國劇)(2)

 

 

해방이 되면서 창극을 ‘국극’으로 바꾸어 부르자고 해서 국극이란 명칭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지난 회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명칭이 바뀔 때쯤 해서부터 공연 작품도 야사나 전설 등에서 소재를 갖다가 만든 창작 창극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국극’이란 전통 판소리에 기반을 둔 창극이 아니라, 창작 창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그래서 ‘춘향전’, ‘심청전’ 등은 지금도 창극이라고는 해도 국극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국극’은 한 때 크게 성공을 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4대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국극사의 ‘만리장성’, 국극협단의 ‘예도성의 삼경’, 조선창극단의 ‘왕자 호동’, 김연수 창극단의 ‘단종과 사육신’ 등이 바로 크게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국극은 음악 면에서 크게 취약하였다.

 

판소리는 수백 년 동안이나 갈고 닦은 소리들, 이른바 더늠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국극의 소리는 창작곡으로 만들어졌다. 한 사람이 금방 만들어낸 소리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명창들에 의해 갈고 닦여진 소리의 차이는 불문가지였던 것이다. 당연히 국극은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국극과 관련해서는 여성 국극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여성 국극단은 1948년 여성들만으로 조직된 여성국악동호회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들은 1949년 두 번째 공연 작품인 ‘햇님 달님’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어 흥행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국극 하면 여성 국극이 먼저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 극단이 성공하게 되자 다른 극단은 완전히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여성 극단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마저 6.25를 거치면서 사멸의 길을 걸었다. 여성국극단의 몰락은 그대로 판소리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이들은 창극과 판소리의 몰락이 여성 국극단에 의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 국극단이란 판소리와 창극이 몰락해 가는 과정에서 최후를 장식했던 형태였을 뿐이다. 이미 판소리나 창극은 사멸의 길로 들어서 있었고, 여성 국극은 잠시 동안 빛을 발했던 마지막 불빛이었을 뿐이다.

 

지금도 여성 국극의 성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여성 국극단이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옛 영화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여성 국극의 성공은 그 자체가 판소리의 실패와 동전의 앞뒷 면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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