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 한국에서 펼쳐진 월드컵 축제는 각본 없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꿈에도 그릴 수 없었던 ‘4강 신화(神話)’를 전설처럼 만들어 냈다. 그 황홀한 기쁨은 온 국민들의 가슴속에 뿌려졌다.
7백만명의 ‘영웅’들은 거리에서, 가정에서 목이 터져라고 응원했다. 젊은 ‘붉은 악마’들은 역대 어느 정권이나 지도자도 해내지 못한 국민화합이라는 드라마를 엮어냈다. 기적과도 같은 ‘4강 신화’에서, 그리고 축구축제의 열정과 환희에서 우리는 국가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원동력의 희망을 보았다.
자찬을 접어두고 외국의 눈에 비친 평가들을 보자.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는 “월드컵 최대 승리자는 한국 국민들”이라고 평가했고 아르헨티나의 한 신문은 “월드컵의 세계에서 한국이 ‘아시아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극찬했다. 중국의 한 신문도 “한국의 축구 팬은 열광적이고 그들의 애국심은 열광적으로 불타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4마리의 작은 용(龍)’중 한국만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월드컵을 개최했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열정과 환희는 희망을 심어주고
이런 감동과 화려한 찬사를 들을 때마다 가슴 뿌듯한 포만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정치판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불만이 가슴 한 구석에서 고개를 내민다.
국회 원(院) 구성도 못하고 있는 파행, 소모적 정쟁과 상극의 정치, 지역감정을 탓하면서 지역정서에 의존하는 지역분열적 행위, 밥 먹듯 다반사로 일어나는 말바꾸기, 말로는 고비용 저효율 정치판을 뒤집어야 한다면서 비생산적 정치에 함몰돼 있는 정치, 이것이 우리 정치의 모습 아닌가.
지방정치도 마찬가지다. 일부 단체장들의 편가르기 등 분열적 행정행위와 잇권챙기기, 겉으로는 주민을 팔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잇속을 우선시키는 일부 지방의원들의 몰지각한 의정활동 등을 보아왔다.
월드컵 감동의 타킷은 이제 후진적인 우리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데 모아지고 있다. 정치도 월드컵 처럼 변하라는 메시지가, 자성하라는 압박이 무언의 압력으로 다가와 있다.
이제는 정치권이 업그레이드돼야
‘포스트 월드컵’. 월드컵의 막이 내려지고 열기도 가라앉았다. 이제는 ‘월드컵 교훈’을 새겨야 할 때이다. 그 대상으로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정치가 단연 으뜸일 것이다.
‘월드컵’은 ‘하면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되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주었다. 축구와 마찬가지로 우리 정치판도 히딩크와 같은 리더십, ‘can do’정신을 바탕삼아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대난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동은 커녕 리더십이나 양보의 미덕을 찾기 어렵고 당리당략에 골몰하고 흠집내기와 물고 뜯는 이전투구가 여전하다. 정치권이 추진하는 ‘업그레이드 프로그램’, ‘한민족 대도약프로그램’도 순서가 전도된 웃기는 발상이다.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한데 모아 감동으로 대폭발시킨 주체가 국민들인데 국민들을 객체화시켜 프로그램을 진행시킨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선후로 치자면 정치권의 자성이 먼저일 터이다.
정치권 스스로의 업그레이드가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것이다. ‘4강 신화’와 국민들의 열정, 외국 언론의 극찬이 우리 정치판에도 흠뻑 쏟아지도록 말이다.
/이경재(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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