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야 한다. 우리에게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신화를 남기고 떠나야 한다.
그가 처음 우리나라에 와서 프랑스 그리고 체코와의 경기에서 모두 5-0으로 패했을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오대영(5:0) 감독이라고 부르며 비아냥 거렸다.
그가 무엇을 아느냐. 돈 낭비다 하면서 거세게 비난했었다.
그러나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4강 신화를 창조하면서 그가 영웅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 "희동구"라는 한국이름을 주고 명예 서울 시민증, 명예박사를 수여하면서 극찬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비난과 칭찬이 너무 극명하다.
못할 때 참고 기다려 주며 비난을 아낄 줄 알아야 하고, 잘할 때 칭찬해주어야 하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 된다. 아무튼 우리는 한·일 월드컵과 히딩크감독이라는 사람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으며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공감대 형성의 좋은 기회
필자는 한국과 폴란드가 처음으로 시합을 갖던 날 30여명의 전북대학교 총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삼겹살 집에서 소주를 곁들이면서 TV중계를 보았다.
일부러 그 날을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식사약속을 한 것이 그렇게 되었다.
필자가 학생대표들을 만난 것은 향후 학교 당국과 학생회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학교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보자는 의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이야기는 조금 밖에 못하고 한 몸이 되어서 우리 국가 대표팀을 응원했다.
경기시간내내 두손을 쭉 펴면서 "대-한민국" "짝짝 짝짝 짝"을 계속 외쳐 댔다. 누가 학생인지 누가 앞으로 대학경영을 맡을 책임자인지 구별 자체는 의미가 없었다. 그냥 좋았고 즐거웠다. 우리나라가 2:0으로 승리하고 경기가 끝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형언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구" "여러분 나 믿지" "그럼요, 잘 부탁드립니다. " "열심히 해 주십시오"
고작 몇 마디 안 되는 대화이었지만 서로 눈빛만 보아도 느낄만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서로를 믿고 대학발전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는데 있어서 그 어느 방법보다도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남긴 교훈을 간직하자
그 날부터 시작된 월드컵에 대한 온 국민의 응원열기는 대단했다.
수십만에서 시작된 거리응원 인파는 독일과의 경기가 열리던 준결승전에는 7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응원을 펼쳤다.
온통 거리에는 붉은 색 상의를 입은 사람들로 붐볐고 여기에는 남녀노소도 없었다. 필자도 그 날 전북일보사 전광판이 바라다 보이는 도로에서 학생들 틈속에 끼여서 열심히 응원했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나 할 정도로 그 응원의 열기는 뜨거웠다. 질서 정연한 붉은 악마들의 응원모습과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카드섹션은 우리들의 가슴을 애국심으로 뭉클 끓어오르게 했다.
이제 월드컵은 끝났다. 지도자 한 사람이 주는 의미도 깨달았고 서로 다른 집단이 함께 응원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도 배웠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 히딩크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축구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살펴보자. 선수선발에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연고주의을 배제하고 감독의 소신 있는 결단이 어떤 결과를 맺게 하는지 우리는 이미 보았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테스트하자, 그리고 과거 모습을 되풀이하지 말자.
히딩크! 그가 남기고 간 교훈을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우리 핏속에 흐르는 저력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리고 우리를 지켜봐 달라.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자.
/두재균(전북대학교 제 14대 총장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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