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월드컵이 단순히 다리로 하는 축구잔치만이 아니라 국가간, 또는 계층간의 가치관, 행동, 관습 등의 이질요소가 하나로 통합되는 ‘문화오케스트라’를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라운드 안팎을 통해 자국의 생활양식과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도 확신하게 되었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의 변두리에서 소도구로 들러리만 서오던 변방의 나라들이 선전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상당부분 새로운 인식체계를 구축하게 된것도 하나의 수확이자 할 수 있다. 이를 기화로 우리 주변에선 ‘세계화’란 말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따지고 보면 이미 세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만큼 우리 생활과 의식전반에 침투된지 오래이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처럼 국토가 좁고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해외로 뻗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에 더욱 가속이 붙게되었다.
선택이 아니라 속도의 문제
그러나 세계화란 연일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루고 활발한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오대양 육대주에 유학생과 이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 교수는 글로벌화의 핵심이 ‘열린 마음(open mind)과 ‘네트워크’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열린 마음이 없는 글로벌화는 남의 잔치의 들러리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이나 구호로는 글로벌화를 외치면서도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국수주의 또는 배타주의의 늪에 갇혀있는 경우를 왕왕 목도하게 된다. 이제 열린 마음으로 세계로 나가고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지난 월드컵때 온통 하나로 엉켜서 태극기를 몸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젠 엉킨 그 하나가 다시 나뉘는 슬기가 필요하다. 움쿠렸던 그 하나가 열, 스물, 백으로 나뉘어 이웃의 가슴에, 세계의 가슴에 파묻혀야 한다.
지연, 학연, 혈연, 정파, 민족 등 하나로만 웅크리고 있으면 우리가 어렵게 이룩한 세계의 축제는 한낱‘한여름 밤의 꿈’으로 전락하고 만다. 반만년 역사와 전통문화를 우리가 아무리 외쳐대어도 다른 나라의 양질의 문화와 극고 받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독야청청으로 끝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어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꽃」천연.
그동안 널리 읽혀온 이 시는, 식물도감에 있는 특정화훼(꽃)를 위해 쓰여진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또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기호 이상의 특별한 관계맺음이 일어나는 것으로, 그 관계맺음은 바로 내 안에서 하나의 의미, 하나의 사랑으로 승화되게 되어있다.
누가‘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내가 먼저‘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화해와 사랑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며, 나아가 세계화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와 관계 맺음 중요
작금 세계화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분야는 두말할 나위 없는 정치가 될 것이다. TV에서 뉴스시간만 되면 재빨리 채널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만치 정치에 식상한 것이다. 한 국가사회의 변화에는 2인3각 경기처럼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지 어느 특정분야만으로는 안된다.
끝으로 세계화라 해서 그에 막무가내로 편승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내것을 송두리째 바치고 동화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건전한 지역브럭화에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국가함몰이나 해체가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 가치를 극고 받아들이는 다원주의, 민족주의안세서 기초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은‘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는 사실이다.
/허소라(시인·군산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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