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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게릴라] 線으로 그리는 "우리 사는 세상"

 

 

만화가는 ‘아이들 코 묻은 돈 뺏어 먹는 놈’에서 ‘21세기 신지식인’으로 변하고 있다. 만화는 이제 멀티미디어 컨텐츠 산업의 핵심영역으로 들어섰고, 이미지도 문자를 대체, 그 활용도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직업적으로 만화를 그리는 일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만화로 세상을 보고 전하는 젊은 만화가들이 있다. 박성필(30), 조양호(29), 나병재씨(28).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선후배간인 이들의 인연은 미술학과 만화동아리 ‘아로미’의 창립으로 더 깊어졌다. 서양화, 동양화, 조소 등으로 구분된 학과에서 만화라는 장르를 꺼내기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이들은 모험을 감행했다. “다 같은 그림인데,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이죠.” 만화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동아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이는 성필씨다. 조각가를 지망했던 그였지만 이젠 쓸만한 만화만평가로 자리잡는 것이 희망이다. 학창시절 취미 삼아 그렸던 ‘주먹대장’이나 ‘유리가면’속 등장인물들이 ‘만화로 승부를 거는’ 그의 인생을 예고했던 셈이다.

 

그는 만화의 색채감을 살려 지역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얼마전 특기적성교육용 만화교재(6권)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모처럼 전공을 살려 월드컵 축구공조형물 작업에 참여했다. 지금은 전통술박물관의 일러스트보드작업에 한창이다. 다시 지역의 든든한 만화인력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요즘 일러스트 작업을 병행하며 카툰과 만평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블랙유머를 구사하고 싶습니다.”

 

병재씨는 2년넘게 해오던 월간지 ‘문화저널’의 카툰과 삽화작업의 바통을 성필씨에게 넘겼다. 선배의 꿈을 잘알고 있는 후배의 애정어린 배려다. 성필씨의 작품은 흔한 소재를 통해 잔잔한 감흥을 전하는 특징이 있다.

 

조양호씨는 순수회화를 바탕으로 하는 서정적인 그림을 그린다. 만화의 모티브 역시 일상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서울 창작 만화/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작품도 유년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그땐 그랬지’.

 

그의 고향인 장수 번암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논두렁 축구, 벼 베기가 끝난 논에서 헤지고 바람도 푸석한 공으로 숨가쁘게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큰 매력을 느낍니다. 만화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가 아닐까요”

 

단행본 출판을 앞두고 있는 그는 지금 분주하다. “만화도 서재에 꽂혀 있을 만큼 고급스러워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의지에 맞게 그가 출판할 책도 고급스런 양장본에 담길 예정이다. 상당한 양의 작업 파일은 그의 작업 공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등학교에서 특기적성교사와 동문거리에 있는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겸하고 있다. 오롯히 작업에만 몰두 할 수 없는 환경 탓이다.

 

이런 고민은 병재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만화잡지 ‘영점프’에서 단편 ‘그녀의 탑승’으로 신인만화가상을 수상한 병재씨는 수상을 기회로 ‘K1’ ‘dreams’ 등 단편을 선보였다. 소재는 젊은이들의 방황과 사랑, 그들이 소망하는 삶.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놓은 그의 만화세계는 좋은 반응을 얻어 고정 연재코너가 만들어졌다. 지역 만화가에게는 흔치않은 기회다.

 

그는 “만화는 표현범위가 넓고 세밀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나타낼 수 있는 훌륭한 예술장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속에는 낙관처럼 고양이 그림이 있다. 미묘한 표정을 가진 수만 마리의 고양이를 탄생시켰던 탓일까. 세밀한 그림을 연습할 때 고양이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고양이를 그려 넣는 작업은 한 장면도 소홀해지지 않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이기도 하다.

 

작은 사물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잡아내 사물을 보는 눈이 날카롭다는 평을  받는 그는 고향인 정읍 태인이 먼저 자랑하는 예술인이 되기를 꿈꾼다.

 

“기술보다는 경험을 쌓고 예쁜 것보다 그 뒤에 감춰진 모습에 주목할 것, 인기만화가를 먼저 떠올리지 말고 우선 험난한 꿈을 생각할 것, 아프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는다.”

 

이들이 만화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어하는 말이다. 물론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하다.

 

이들 작업실 한 쪽에 써붙어있는 낙서 한귀절.
‘뙤약볕에서 막노동하는 분들을 생각하자. 지금 난 정말 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 하나에 스며 있는 그들의 철학은 더 큰 세상을 바라보며 획을 긋는다.

 

※이들은 만화제작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은 [email protected]로 연락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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