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에 있는 우석병원 226호실.
칠순의 어머니와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중반의 아들이 한 병실에서 똑같이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시어머니와 남편을 간호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딸을 양육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한 가정주부의 가슴아픈 사연은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이순자씨(38)로 이씨는 공무원인 남편을 만나 평범한 생활을 해왔다.
남편인 백승주씨(43·검산동 주공아파트)는 당초 김제시청에 근무하다 83년 7급 승진과 함께 전주시로 전출됐다. 비록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행복했던 백승주·이순자씨의 가정에는 그러나 지난 94년 생각지 않던 불행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예수병원과 서울중앙병원에서 각각 두차례씩 모두 4번에 걸쳐 위암과 직장암 수술을 받으며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집안살림은 기울어 버리고 더욱이 직장마저 그만 두면서 생활고로 시달려야 했다.
이런 와중에 시어머니인 김점례씨(75) 마저 위암 판정을 받아 사투를 벌이면서 집안살림은 더욱 힘들어져만 갔다. 비록 ‘보호 1종’으로 돼있어 치료비는 전액면제를 받지만 식비며 약값 등 각종 부대비용, 그리고 항암치료비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 부담은 모두 이 씨가 짊어져야만 했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년인 두딸을 그늘지지 않게 키우기 위해 이씨는 식당으로, 주차장으로 뛰어다니면서 병간호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불과 7평 남짓한 아파트이지만 이씨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하루 빨리 완쾌돼 두 딸과 더불어 한집에서 생활하는게 소원이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큰 딸이 다니는 김제여중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면서 이씨는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난 10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떠올라서가 아니라 길고 긴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길어봐야 6개월 산다는 말을 들었을때 “도망이라도 가버릴까, 차라리 나도 남편을 따라갈까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두 딸아이를 두고 차마 아무곳에도 갈수 없었다”는 이씨는 김치 한포기라도 나눠주는 따뜻한 이웃들의 격려때문에 힘들지만 하루하루를 밝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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