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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게릴라] 시네마 팩토리 최광석씨

 

 

전주시 중노송동 멀티미디어센터 3층. 늦은 10시를 넘겨서야 최광석씨(33)를 만날 수 있었다. 영상관련 단체를 설립하기 위한 모임 때문에 부안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헝클어진 고수머리에 나이 들어 보이는 까무잡잡한 얼굴, 정돈되지 않은 수염, 작업복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다니는 그의 외모로부터 영화제작소 ‘Cinema Factory’(이하 시팩) 대표나 영상 프로덕션 ‘EID6’(ettect in digital) 경영자란 직업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소탈하고 텁텁한, 항상 얼굴 가득 웃음을 쏟아내는 그에게서는 듬뿍, 정이 묻어났다.

 

89년 지금은 독립영화협회로 합쳐진 ‘영화마당 우리’에서 활동, ‘16㎜필름워크숍’에 참여했다. 초창기 일용노동조합에서 일하며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영상운동에 관심을 두게 됐다. 나이 어린 시팩 식구들에게서 간혹 마르크스나 체게바라 등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것은 모두 그로 인해서다.

 

고향에 돌아온 90년대 중반쯤 부안에서 공동체 생활에 합류한 당시 그의 생활은 윤구병 선생(변산공동체)이 쓴 ‘잡초는 없다’(보리·1998)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윤선생은 그를 ‘어리석은 어부’로 칭했지만 그 글속에는 그에 대한 신뢰가 한아름 담겨 있다.

 

시팩이 만들어 진 것은 4년전.
프리랜서 활동을 하던 그가 우연히 합석하게 된 박동기(27), 전은서(28), 신기록씨(27)와의 술자리에서였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푸념 섞인 그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았던 것.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인 셈이다.

 

그 후 전주영화제 워크숍과 시민영화제 등을 거치며 이런 저런 인연들이 이어졌다.

 

현재 ‘EID6’를 함께 하고 있는 노윤(28) 이경아씨(22)나 시팩에서 활동중인 김효정(25) 이승애(25) 김민경(22) 현재영(22) 김반지(21) 장광수씨(21) 등이 그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시팩은 지역에 처음 만들어진 단편영화제작단체였지만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출을 꺼리는 그들의 성격 탓이다.

 

그러나 영화제작공장이라는 그들의 이름에 걸맞게 벌써 10여편의 영화를 발표하며 지역 영화제작열기를 달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항문파열기’(연출 박동기)로 TTL영화제 본선에 진출했고 전북시민영상제에서는 ‘거리’(연출 노윤)로 장려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게릴라 CF’에 출품한 작품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 초부터 퍼블릭엑세스 프로그램을 제작·상영, 그는 VJ리포트란 칭호도 낯설지 않다.

 

두 차례 치러진 전주시민영화제에도 ‘출근길 삼종경기’(연출 박동기) ‘그, he’(연출 최광석) ‘칼의 뼈는 인쇄한다’(연출 김민경) 등의 작품을 지난해에 이어 꾸준히 출품했다. 구성원 대다수가 지역 영상일꾼으로 각 영화제에서 스텝으로 참여했고 지난해 시팩의 이름으로 작은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영화는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문화이니만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누구든 와서 작업할 수 있도록 시팩의 문을 열어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그가 시팩 식구 세명과 함께 시작한 것이 영상 프로덕션 ‘EID6’다.
디지털 단편영화 제작 단체와 전북에 처음 생긴 단역배우 에이전시로서 많은 극영화의 보조출연과 장소 섭외·세트제작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요즘 부쩍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이 지역에 꼭 필요한 단체인 셈이다.

 

“멤버들의 졸업시기가 되면서 생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왕이면 영상관련 단체에서 일하면서 더 가까이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법이다’‘아프리카’‘재밋는 영화’‘복수는 나의 것’ 등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영화와 뮤직비디오는 수십 편에 이른다. 아직 큰 수입을 얻진 못했지만 수익의 대부분은 가능한 영화제작에 쏟아 부을 생각이다.

 

“일정한 재정의 확보는 준비단계부터 더 치밀해지고 과감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벌써부터 흥에 겨워 있다.

 

그는 지난해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커미션 박람회에 참여한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전 세계의 자발적인 영화 관련 단체들의 활동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영화제작뿐 아니라 전북의 영화촬영지에 대한 자료를 전산화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달지도 맵지도 않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 표정을 지닌 최광석씨. 많은 영화가 전북인들의 손으로 전북땅에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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