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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휴가, 유배 그리고 역사의 발자취

 지난 주말에 정말 의미 있는 휴가를 다녀왔다. 모처럼 아내와 단둘이 떠나는 오붓한 여행이었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세월을 음미하면서 마음속에 남는 감회는 그렇게도 클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이왕 “서해안 고속도로”라는 이름처럼 도로를 건설하려고 했으면 가끔 우측에 해안가 마을과 바닷가가 보여야 할 텐데 전혀 그러질 못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서해안 고속도로는 잘못된 이름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서해안 가까운 고속도로”라고 해야 맞다. 아마도 낭만 보다는 기능적인 면과 실용성이 더욱더 우선이었을 것이고 공사비용을 아끼느라고 그냥 내륙 쪽으로 공사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원히 존재할 도로라고 생각하면 그런 면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작지만 큰 '우리나라'

그러나 도로주변은 짙은 녹음이 온 산하에 어우러져 있고, 흰 구름들은 그 중턱을 휘감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를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큰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를 지나서 도착한 곳은 땅끝 마을로 유명한 해남이었다. 여기서 먼저 대흥사(대둔사)를 둘러보았다. 서산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고 산세의 수려함에 과연 이름난 절의 면모를 갖추고 있구나 했다.

첫날은 그쯤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우리는 과거 역사의 현장 속에서 또 다른 문화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해남의 고산 윤선도(1587~1671) 종가인 녹우당과 강진의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유배터에서 시작되었다.

낮은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녹우당은 비전문가인 필자가 보아도 ‘집터로서 과연 위치한번 잘 잡았구나!’하는 탄성이 나왔다. 전시실에 있는 윤선도와 윤두서(1668~1715)의 역사적 자료들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고산 윤선도는 그의 일생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적으로는 불우한 생을 살았지만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많은 문학작품을 남김으로써 문학적으로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유배는 역사의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으로서 인물화와 말 그림을 잘 그린 조선 중기와 후기를 잇는 중요한 화가이다. 그는 1693년 25세에 진사가 되었으나 당쟁으로 세상이 어지럽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그의 그림은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필력에 바탕을 둠으로써 사실에 가까울 정도의 정확한 묘사가 특징이다.

하지만 그가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동국여지도와 일본지도, 그리고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저서를 보면서 쉽게 이해가 된다. 그는 화가이면서도 대표적인 실학적 학문에 취향을 가진 학자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방문한 강진의 정약용 유배터는 더욱더 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그는 컴퓨터?복사기도 없던 시절에 유배생활이라는 제한된 조건하에서 참고문헌 등을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을 텐데 500여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

고산은 벼슬기간보다도 은둔과 유배의 세월이 더 많았다. 다산은 유배생활과 형제들이 천주교와 관련되어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통함과 한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처럼 힘든 인생이 이율배반적으로는 역사의 위대한 업적이 되어서 우리 앞에 놓여있다.

만일 그들이 유배생활을 하지 않고 한양의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보냈어도 그러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렇게 보면 참으로 묘한 것이 인생이다. 고난과 함께 한 개척정신, 시련과 함께 한 극복 노력, 좌절과 함께한 승화정신이 오늘날 그들을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휴가는 공부 한번 잘했다.”

 

 

/두재균(전북대학교 제14대 총장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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