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엄 춈스키의 『9·11』
주한미군과 소파협정에 관한 시사토론을 텔레비전에서 본 일이 있었다. KBS였던가, MBC였던가 잘 모르겠다. 저런 얘기들도 이제는 맘놓고 하는구나 싶어서 퍽 인상 깊었다.
서로 상반된 견해로 나뉘어진 열띤 설전 때문에 자정을 훨씬 넘기면서도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미국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우방이다. 우리의 자유민주를 지켜준 나라다. 그러므로 소파협정이 다소 불평등하더라도 감수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네의 이익을 위하여 파견된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우리가 분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군이 파병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과 같은 수준으로 소파협정이 개정되어 국가적 자존심이 회복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주한미군은 철수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들도 있었다. 두 견해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며 불꽃 튀기는 설전은 밤 깊도록 이어졌다.
출연자들은 정확히 두 편으로 나뉘어 ‘이 세상에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다 있단 말인가’싶은 눈빛으로 서로 상대편들을 바라보곤 했다.
같은 하늘을 이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서로를 경멸하는 듯한 눈빛들만 서로 닮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들의 견해는 완전히 달랐다.
미국은 북의 남침으로 인한 아슬아슬한 군사적 정치적 위기에서 한국을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과 흉년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로부터 한국인들을 건져주었다는 것이 한 쪽의 주장이고,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놓고 그 손으로 약을 발라준 놀부를 세상에 어느 제비가 고맙게 여기겠느냐면서 당시의 미국을 원망하는 것이 다른 한쪽의 견해였다.
세기의 석학, 노엄 춈스키의 ‘9.11’을 읽는다. 9.11 테러 이후 춈스키가 여러 신문 방송 기자들과 가진 회견 내용을 모아놓은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촌 곳곳의 약소국을 상대로 저질렀던 온갖 범죄들과 그와 관계되어 희생된 수백만 약소국 백성들의 한을 한꺼번에 되씹게 한다.
이차대전 이후 가장 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치러온 나라, 춈스키가 일찌감치 ‘불량국가’로 점찍은 나라, 그들의 탐욕은 번번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의도된 오폭도 서슴지 않으면서 만만한 나라만 골라 누구네 이름처럼 조지고 부시는 일, 놀부처럼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놓고 약 발라주는 일에 이골나 있다. 요즘에도 어떻게든 이라크를 또 조지고 부시려고 안달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우방이라는 그들은 또 우리와 상의 한 마디 없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계획을 미리부터 새워놓고 있다고 한다.
문민정부 말년에는 하마터면 그 핵폭탄이 터질 뻔했었다고도 한다. 미국이 아프칸에서 소련을 몰아내려고 끌어모아 훈련시킨 이슬람 다국적군이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의 병력이었다.
그를 잡는다는 핑계로 아프간을 초토화시켜 카스피해의 송유관 매설작업을 하고 있는 사실이 남의 일만 같지 않게 섬뜩하다.
아무리 대통령선거 때문에 맘들이 바쁘더라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제법을 상습적으로 짓밟는 불량국가인가 정의의 나라인가를 주제삼는 토론이 우리나라에서도 한번 진지하게 열려봤으면 좋겠다.
/정양(시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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