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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이 가을에 ‘나’로 돌아오자

 

 

 

 

 

거대한 여름이 육중한 둔부를 내밀며 쓰러지는가 싶더니 벌써 가을이 져물어 가고 있다.

 

 

바람에 지는 낙엽이 실연한 자에게는 비애의 끝자락이요 복권에 당첨된 자에게는 하늘에서 뿌려지는 지폐장으로 보일수도 있다.

 

 

이처럼 사물과 인생은 보는 자의 위치와 관점에 따라 다르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벤치앞으로도 장의사의 육중한 차체가 구세기의 회색 엔진소리를 내며 나른한 오후를 가르는가 하면 그 뒤로 갓난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지나가고 곧 이어 비타민 C가 뺨에 넘쳐흐르는 수녀들이 지상의 모든 고뇌를 우리에게 넘겨달라는 듯 밝고 화사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자신을 비추는 거울 들여다봐야

 

 

이제는 모든 축제가 끝나고 조용히 ‘나’로 돌아와야 할 시간, 텅빈 광장에서 나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나를 비치는 거울, 그 깨진 거울을 다시 마춰야 할 시간이다.

 

 

영국의 어부들은 그물질을 할 때 큰 고기만 잡고 그물 속에 담긴 새끼 고기들은 자비를 베풀어 바닷속에 다시 놓아준다. 이 때 그들은 큰 소리로 ‘빽 홈’을 합창한다.

 

 

우리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빽 홈’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실내악이 준비된 그 마음의 고도(古都)를 찾아가자. 그곳엔 지난 여름의 요트도 없고 하얀 별장도 없지만 우리를 위해 안락의자가 있고 기름등잔이 있고 몇권의 책도 가즈런히 놓여있다.

 

 

우리의 위대하고도 허황된 꿈을 위해 상상의 자유도 마련돼 있다. 이 자유를 통해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 낸 내 인생의 형태위에서 구축된 세상만이 확실한 존재이며 그 밖의 일체는 불안정한 것’이라고 한 싸르뜨르의 말처럼 새로운 ‘나’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여, 어서 우리 조용히 책장을 넘기자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도 좋고 내일의 새로운 꿈을 다짐하는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를 읽어도 좋으리라.

 

 

그리하여 혼미스런 어제의 환각속, 그의식의 기념관에다 우리도 낙엽을 긁어모으고 강한 겨울과 강한 밤바다와 싸우지 못하는 그 허상(虛像)들을 불태우자.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읽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것이 우수한 작품이라면 그것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부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감정들과 해후한다. 그 감정들에는 정확한 이름이 붙여져있지 않지만 우리는 다른 작가들이 살 작품을 통해 자기의 이름 없는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게 된다.

 

 

작품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기 내부의 충동과 감정을 의식앞으로 이끌어 내게 하는 심적 구조를 말한다.

 

 

좋은 책 읽어 정신적 풍요 갖길

 

 

그러므로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한 개인의 내적, 지적 성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자기 속에 있는 많은 충동, 또는 감정이 밖으로 드러날수록 그의 판단 범위가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판단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인생을 그만치 다양하게 사색하며 정신의 풍요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의 고단한 꿈의 구리거울을 닦아주며 가을이 사르르 눈감으면 또 하나의 낯선 계절이 군화소리를 내며 진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냉정히 가려야 할 시간. 그리하여 신의 언약을 챙겨넣은 묵직한 가방을 들고 또 재난의 세계 속을 달려가야 한다.

 

 

그 이전에 나로 돌아와야 한다. 나로 돌아오는 시간처럼 쓸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진정한 나로 돌아오는 시간처럼 기쁠 수가 없다.

 

 

/허소라(시인·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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