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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시인의 책으로 읽는 세상] 콩깍지로 콩을 삶는

 

 

강만길 외지음  <우리역사를 의심한다>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이 일곱 걸음 안에 써야 했다던 ‘七步詩’는 골육상쟁의 비극을 “콩깍지가 콩을 삶는” 비유로 읊어 일찍이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었다. 이 땅에서 그런 저주받은 전쟁을 치른 지 반세기가 지나간다.

 

그나마 운 좋은 피붙이들이 서로 만나는 이산가족상봉의 울음바다는 저주받은 전쟁이 오십 년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그 눈물바다를 접할 때마다 해방정국에서 국토분단을 선도했던 이들, 통일조국을 주장하다가 암살당한 이름들이 겹쳐 생각나곤 한다.

 

서로 부등켜안고 흐느끼던 이산가족들은 시간이 되면 말 잘 듣는 초등학생들처럼 줄 서서 버스에 오른다. 갈림길의 버스를 서로 뒤죽박죽 좀 섞어 타면 안 되나. 서울에서든 금강산에서든,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배를 쨀 테면 어디 째보라고 좀 버티면 안 되나.

 

동족인 우리들은 그 만남과 이별이 다행스럽고 분하고 안타깝고 소름이 돋지만 선진국 사람들이 그 화면을 본다면 지구상에 아직도 저런 야만적 만남과 이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초등학생들처럼 줄 서서 버스에 오르는 어른들을 보면서 그들은 또 이 세상에는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며 머리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눈물바다는 남이 볼까 두려운, 분단이 빚어놓은 숱한 야만적 현실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여럿이 공동집필한 ‘우리역사를 의심한다’에서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그늘들을 조명하면서 분단으로 인한  어두운 현상들도 몇 차례 논의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SOFA에 관한 김보영의 글, 우리 사회의 냉전세력에 관한 강만길의 글이 남들 알까 두려운 우리의 야만적 현실을 쓰라리게 곱씹게 한다.

 

도둑놈이 왠만해서는 범행을 자백하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 친일세력, 극우파, 냉전세력임을 자처하는 이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겉으로는 모두들 평화통일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는 그 냉전세력이라는 것이 또 엄연히 존재한다. 하는 짓들을 보면 콩깍지로 콩을 삶던 전쟁을 그들은 예사롭게 여기는 것 같다. 모르긴 해도 북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식민지시대의 친일세력이 해방정국에서 분단세력이 되었고 그 친일세력과 분단세력을 뿌리삼아 극우 반공세력이 이 나라에 자리잡았다는,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에 정치적 경제적 바닥을 든든히 다진 그들이 민주화시대에 이르러 냉전세력이 되어 있다는 강만길의 말은 80년대의 이 나라 대학생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던 내용들이다.

 

십여 년 전의 그 상식을 강만길이 새삼 강조하는 까닭은 아마도 남북화해무드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냉전세력들의 결속이 요즘들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세력이 와해되고 냉전세력의 결속이 강화되는 대선정국이 정말 아슬아슬하다.

 

/정양(시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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