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지방도로에서 두 여중생이 미군 전차 구난차량에 의해 사망케 된 사건에 대해 미군 영내 형사재판에서 두 사병 모두에게 무죄 평결을 내린데 대해 온 국민들은 연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어쩌면 도시, 제어장치가 풀린 미국의 ‘힘의 논리’는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인간의 신성한 자유와 인권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세울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남의 나라 평가의 잣대로 삼고 있는 미국이 이럴수가 있을까?
만일 이와 유사한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어찌 되었을까 결단코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가 미국의 도덕성을 또 한번 의심케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의 도덕성 의심케 해
잘 알다시피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연간 3천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일 만치 미국의 한 상징물이 되고 있다.
이 여신상은 자유와 희망, 그리고 진리와 정의를 상징하며 자유를 찾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표상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발아래의 쇠사슬은 노예해방을, 높이 치켜든 횃불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를 뜻하고 있다.
1883년 엠마가 유태인을 위해 쓴 시 「새로운 거인」이 “그녀는 세상을 향해 불꽃을 피우고 있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 모두 나에게 보내다오 나는 그들을 위해 불을 밝히고 있다.”라는 구절과 함께 새겨져 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등가물로 우뚝 서 있는 이 여신상은 동시에 미국이 안고 있는 불평등과 부자유의 역설적 상징이 되기도 한다.
잠시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지난 1991년 걸프전에서 패배한 이라크가 지금 11년 전의 전쟁 후유증으로 매월 수천여명이 죽음을 맞고 있으나 치료약이 없어 속수무책이라는게 현지 보도이다.
한 때 중동 제일의 산유국이었던 이라크가 지금 식량과 의약품 부족으로 신음중이며 당시 탱크를 뚫기 위해 사용한 우라늄탄의 방사능으로 인해 숱한 어린이가 질펀하게 누워있고 산모는 곧잘 기형아를 낳고 있다.
결국 독재자 사담 후세인 한 사람을 제거키 위해 2,200만의 이라크인이 담보로 잡혀 신음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세계의 이목들은 미국의 중동의 원유통제전 때문으로 보려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어 노암 촘스키 같은 교수는 궁극적으로 미국보다 더 강한 나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로마적 정책’추구가 그 핵심이라면서 그 남은 과제가 빈 라덴과 이라크와 북한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시선을 안으로 돌려본다. 지난 1964년 2월, 아직 채 눈이 녹지 않은 추위 속에 배고픔을 참지 못한 한 소년이 당시 경기도 운천리에 주둔중인 미군부대의 철조망을 몰래 숨어들다가 초병의 총격으로 무참히 사살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중앙 일간지들은 눈치만 보며 가까스로 사회면 1단으로 싸늘하게 처리하고 말았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필자가 본보에 「목종(木鐘)」이라는 제목으로 이 소년의 죽음을 시에 담자 곧이어, 석정 시인이<-素羅의 ‘목종’에 괘념하여>라는 부제가 달린 「슬픈 서정」을 발표하였고 “그 때 눈 속에 흘린 소년의 피는 시방쯤 다냥한 햇볕에 녹아 인젠 한강으로 금강으로 낙동강으로 철철 흘러갈 것이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뒷날 시집 『산의 서곡(序曲)』에 담겨져 하나의 증어록으로 남아 있다.
세계 자유와 평화 기여하길
이 당시에 비하면 그래도 항의의 목소리도 내고 형식상으로나마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낸, 진일보의 한미관계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이엔 무려 40여년의 세월이 누워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누가 뭐래도 지금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어 있다. 미국이 그동안 주장해온 ‘슈퍼 파워’역시 군사적 파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 힘이 다른 곳으로 유도되어져야 한다.
자유의 여신상이 뜻하는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라는 오직 인도적 목적 아래에서만 발휘되어져야 한다.
그럴 때에만 ‘주둔군’이 ‘점령군’으로 의심받지 않게 된다. 미국의 ‘힘’이 축복으로 비쳐질 날을 기대해 본다.
/허소라(시인·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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