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헐뜯고 깍아내리는 풍토,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바람직스럽지 못한 풍토를 없애고 강한 전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새 도민운동을 시작하는 강현욱지사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산고 끝에 나온 새 도민운동의 명칭은 ‘강한 전북 일등 도민운동’으로 낙점됐다.
일등도민이란 말이 70년대 서열만능을 연상시키는 듯해서 촌스럽기는 하지만 지향하는 바가 하도 원대하기 때문에 애교스럽게 봐줄만하다.
강지사가 4일 새 도민운동을 선언함으로써 유종근 전 지사의 ‘새천년 새 전북인운동’에 이어 민선들어 두번째 도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그러나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지사 바뀔때마다 도민운동?
우선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새 도민운동을 벌여야 하는가의 문제다. 정권이 바뀌면 제일 먼저 손대는 작업이 과거부정이다.
이는 개혁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정으로 뒷받침되기도 하는데 단절을 통한 새 정통성 세우기에 다름 아니다. 새 도민운동이 이런 연장선에서 추진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둘째는 절차상의 문제다. 공청회 용역 등 민주적 절차를 밟아 진행된 ‘새천년 새 전북인운동’에 대한 정리나 평가과정이 생략된 채 또다른 새 도민운동이 추진되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다.
행정의 연속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운동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새 도민운동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절차가 전제돼야 이치에 맞다.
셋째 ‘새천년 새전북인운동’과의 관계. ‘강한 전북 일등 도민’은 인적 물적 자본의 인프라 구축과 도민의식의 선진화에 달려 있는 사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할 것이다.
특히 ‘일등도민’ 부문은 우리 지역의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와 배려, 협동 등 이른바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갖춰져 있느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런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함양해 나가자는 것이 ‘새천년 새 전북인운동’이었지 않은가.
글로벌시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이 운동은 어쩌면 범국민적으로 체화해야 할 예절운동이자 의식운동인데 새 도민운동은 이 운동과 어떤 차별성을 띠고 있는가, 형태만 달리한 째내기식 운동은 아닌가.
넷째 추진주체의 자기모순은 없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새천년 새 전북인운동’은 일회성이 아니라 20년 30년 지속적으로 우리가 꼭 해야될 운동”이라며 도민세금을 쏟아붓고 길거리 캠페인을 벌이며 도민참여를 호소했던 공무원과 민간단체들이 이제는 새 도민운동을 놓고 이와 똑같은 설법을 도민들에게 해야 할 상황이 됐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다섯째 21세기를 맞은 지금도 구호행정이 필요한가의 문제다. 구호행정은 정통성이 부족했거나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구시대적 유물과 같은 것이다. 자기철학만 확고하다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식의 구호행정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하나의 도민운동’돼선 안돼
어쨌든 새 도민운동의 닻이 올려졌다. 강현욱지사의 진단대로 서로 헐뜯고 끌어내리려는 풍토가 있다면 개선해야 하고 무기력한 분위기 역시 일신해 강한 전북으로 탈바꿈시킬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강한 전북 일등도민’은 선언적 캠페인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실천방법을 제시해 도민참여를 극대화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전시적 도민운동, 새 지사가 도정을 맡았으니 새롭게 해 보는 ‘또 하나의 도민운동’에 그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경재(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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