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靜中動)’. 월드컵, 부산아시안게임,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거대 행사에 가린 한국문학계가 올 한해동안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한 반면, 전북문학계는 그 어느 해보다 활기찬 모습을 보였고 백가쟁명식 논쟁과 담론을 이끌어냈다.
‘실천문학 의지’를 다진 전국민족문학인 전주대회와 작고작가에 대한 조명, 그리고 친일문학 논란이라는 화두를 쏟아냈다.
중진작가들의 창작집 발간 활발 등 문학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발간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지난해 저조했던 문학인들의 창작활동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풍성한 결실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 창작물의 양산이 문단을 기름지게 한 토양이라기 보다는 함량미달이 많았다는 평가가 이어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11월 전국의 민족문학인 2백여명이 모여 ‘문학인의 시대 참여’라는 고고성을 울린 전국민족문학인 전주대회가 올해 전북문학의 가장 큰 성과.
영호남문학인대회를 전국대회로 확장시킨 전북작가회의의 역량과 지역작가들의 열정이 빚어낸 이 대회는 현시대가 문학인들에게 요구하는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성과 함께 펜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실천의지를 담아냈다.
‘전주선언’은 넓게는 세계 평화와 한반도 평화, 구체적으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이 건강한 이념성 회복과 현실 참여에 있음을 천명했다.
작고작가들에 대한 추모사업 추진도 지난해에 이어 활발했다. 혼불기념사업회가 ‘혼불’작가 최명희의 작고 4주기를 맞아 2회 혼불문학제를 열었고, 전주와 남원을 잇는 혼불문학기행을 연중 기획해 독자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또 전주시와 남원시가 최명희의 문학세계와 삶을 조명하는 ‘혼불’기념사업을 전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전시성이나 중복성 사업으로 추진돼 오히려 문학적 성과를 왜곡시킬 우려가 커졌다.
계가 문예연구는 전주출신으로 민족해방운동전선에서 활동했던 탁월한 리얼리즘 시인이었던 김창술씨(1902∼1953(?))의 문학세계를 발굴했고, 석정문학은 목가시인으로 알려진 신석정 선생을 사회참여형 자연시인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특집을 다뤘다.
채만식 탄생 1백주년을 맞은 기념행사도 열렸다. 군산을 중심으로 채만식탄생1백주년기념사업회가 결성됐고 지나 10월 25일 기념행사를 가졌지만 ‘친일논란’에 얽혀 행사 규모가 축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8월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공동 발표한 친일문학인 42인 명단은 미당 서정주 추모사업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 부딪힌 문인협회 고창지부는 ‘제1회 미당시문학제’를 취소했고, 열린시창작회는 ‘미당 문학기행 및 미당시 재조명’를 고창에서 치르지 못했다.
동인모임의 중단없는 활동과 문학단체 창립의 성과도 알차다.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생과 수강생이 중심이 된 행촌수필문학회가 창립, 창간 동인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전북문인협회는 이철균문학상을 제정, 문인들의 창작열을 북돋는 기반을 마련했고 전북작가회의의 여름시인학교와 월례문학토론회, 전북펜클럽의 찾아가는 문학활동, 열린시창작회의 작고작가시낭송 등은 문학대중화의 기틀을 다지기에 충분했다.
개인 창작활동 중에서도 중진작가들의 활동이 도드라졌다. 안도현 시인은 산문집 ‘사람’과 그림책을, 김용택 시인은 일곱번째 신작시집 ‘연애시집’을, 소재호 시인은 두번째 시집 ‘용머리 고개 대장간에는’을 펴냈으며 신정일씨는 ‘한국사 변혁을 꿈꾼 사람들’과 ‘한강역사문화탐사’를 잇따라 출간했다.
질적인 성과를 반감하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젊은 시인 박성우씨가 첫 시집 ‘거미’를 발표 주목을 받았지만 수년간 지속됐던 신인들의 저조한 활동이 끝내 되살아나지 않았고 문학동호회의 행사도 문학대중화 작업까지 이어지지 않고 회원잔치에 그치고 마는 한계를 드러냈다.
전북문학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했던 원로작가들의 타계 소식도 문단에 안타까움을 안겼다. 시조시인 작촌 조병희 선생이 지난 17일 타계, 지역문인들을 허허롭게 했으며 백양촌 문학상을 수상했던 권진희 시인과 아동문학가 오영환씨도 유명을 달리해, 전북문단에 빈자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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