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의 화두는 여전히 눈높이를 낮추는 따뜻한 이웃들의 활동이다. 세상은 각박해도 아직 인정은 메마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망년(忘年)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송년 모임 장소 예약이 힘들 정도로 연말 분위기에 들떠 흥청대기도 하지만 한 쪽에서는 술자리 대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거나 성금과 생필품을 기탁하는 흐뭇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척박한 토양에서 우리 사회가 그나마 이 정도의 공동체 의식을 갖추고 온기(溫氣)를 유지하는 것은 수많은 숨은 선행 덕택이다. ‘왼손’이 모르게 그늘진 이웃을 위해 베풀고 봉사하는 고귀한 손길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이 세상의 그늘을 밝히고 우리 삶의 주름을 펴주는 평범한 이웃들이 주위에는 적지 않다. 결코 여유롭지 않은 살림에서도 나눔을 실천하고, 한가롭지 않은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 정기적으로 불우이웃을 방문해 선행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얼굴없는 천사들의 ‘아름다운 고집’은 저무는 해를 뿌듯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몇일전 전주에서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동사무소옆에 현금과 빨간 돼지저금통을 남긴뒤 자취를 감추고, 같은 날 익명의 독지가가 1천㎏가 넘는 돼지고기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북지회와 무주군에 보내는등 도내 곳곳에서 훈훈한 미담이 피어나고 있다.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삶은 청소년기 학생들에게도 확산되면서 춥고 쓸쓸해지는 연말을 데우고 있다.
군산 제일고 김태인군등 3남매가 작년에 이어 평소 다루던 악기로 거리 콘서트를 열고 사랑의 도시락 성금을 모아 끼니를 굶는 친구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는 갸륵한 마음씨가 눈에 차오른다.
정읍의 개인택시기사 박옥배씨도 이 행렬에 서 있다.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정읍에서 전주까지 1백리를 왕복하며 전주은화학교에 다니는 정읍시내 정신지체아 6명을 택시로 등·하교시키고 있다. 벌써 5년째이다. 차안에서 대변을 치우기도 하는등 사연도 많았지만 박씨의 통학택시가 멈춘 적은 없었다. 그는 “아이들의 웃음이 차비”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들 선행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자선은 큰 희생 없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전하고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곳은 ‘저 낮은 곳을 향하여’다. 아직도 변변히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
기부문화가 정착된 미국의 경우 시민참여율이 90%에 이르는 반면 우리는 불과 7%선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차원의 높고 낮음을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다.중요한 것은 우월한 마음에서 내려다 보듯하는 도움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먼저 필요하다.
어떤 동기에 의해서든 이웃돕기는 숭고한 일이다. 올 연말연시는 우리 모두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할지라도 마음이라도 넉넉하게 먹고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잠시 잊었던 이들에게 온정과 관심을 베풀며 '함께 사는 사회'의 정을 나눌 때이다. 힘들고 바쁜 세상살이이지만 시간과 정성을 쪼개 불우이웃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계미년 새로운 해에 대한 부푼 기대와 강렬한 희망의 빛 저편에는 낮고 그늘진 곳이 있음을 생각하고 가는 임오년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최동성(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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