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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전반적으로 시의 수준이 높았다. 다들 엇비슷해서 그런지 우뚝하게 빛과 향기를 발하는 수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와 비교하면 주제와 어법이 다양해진 것은 보기 좋았지만, 길이가 길어지고 말이 많아진 것은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꼭 필요해서 길어졌다고 보기보다는 손길과 생각이 거칠어서 간추려지지 못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를 사랑하는 일은 말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아껴 고르면서 부심하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심해서 고른 말로 이룬 시는 전체와 세부가 모두 방만하지 않은 법이다.

 

유희수, 김일영, 이광찬, 최용만, 장창영 제씨의 작품들을 남겨서 거듭 읽었다. 저마다 귀한 장점이 있는 개성적인 시들을 보내셨다.

 

장점과 단점을 저울질하여 마지막에 남긴 작품은 ‘산수유’(최용만)와 ‘왕오천축국전’(장창영)이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어법이 서사적 소재와 만나 빚어낸 아름다운 작품이었으나, 통일적이고 일관된 주제 효과를 거두는 데 부족함이 보였다.

 

동봉한 다른 시들도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고, 특히 풍자와 알레고리의 방법이 돋보였는데, 역시 전자와 같은 단점을 나누어 가지고 있어 아쉬웠다.

 

후자는 선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시로서, 비교적 침착한 어법과 안정된 서정시의 감각, 그리고 시대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었으나 또한 세부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

 

숙의 끝에 ‘왕오천축국전’을 당선작으로 고른다. 천삼백 년 전 머나먼 구도의 길을 떠난 조상을 상상의 묘법에 기대어 오늘의 아우로 바꾼 기지와, 아우의 방황과 그에 대한 연민이 결국 우리 겨레의 묵은 염원으로 연결되는 스케일, 그리고 동봉한 시들이 뒷받침하는 다양한 시적 고민과 탄탄한 언어적 능력를 사기로 한 것이다.

 

번번히 낙선의 쓴 잔을 들면서도 꾸준히 시의 길을 다져온 장창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아울러 선에 오르지 못한 분들께 간곡한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최승범(전북대 명예교수, 시인)
/이희중(전주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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