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2003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

 

지금도 무릎이 시큰거리느냐

 

천 삼백 년이면 불심 강한 이도 한 수 접고 가는 길
어쩌면 너도 천축(天竺)서 관절 꺾고
절 마당 목욕탕인냥 푸욱 담그고 싶었겠지
북녘땅 접어들 때엔 미처 예측 못했겠지
살아 있는 부처 만나기 위해 떠났던 기약 없는 길이었기에
다들 흑백사진 속 표정 없는 얼굴과
써금써금 해진 활자 이야기로만 기억하지만
너만은 또렷이 알고 있지

 

총령(蔥嶺) 거쳐 오대산 한 달음에 달려오던 발길이
꼬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지
중국 공안에 쫓기던 어린 눈동자
고향이 함흥이랬지
단속 피해 신발만 챙겨든 채
훈춘 화룡 거치면서 몸은 숨 죽이는 일에
더 빨리 익숙해졌다지
장춘행 기차에서
매운 기침으로 쏟아지며 안겼을 때
네 몸은 후끈 달아올랐다지
부처님 진신사리 접했을 때보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변변히 옷가지도 못 챙기고
도문 국경* 저편에서 물끄러미
강 이쪽으로 씁쓸히 시선만 던지던 아우여!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안으로
성큼, 건너 설 때는 언제인가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부처 때문인가, 꽃제비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무심한 우리 때문인가
오늘도 목숨을 승인 받기 위해
연변, 길림, 용정으로 떠돌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혜초, 내 어린 아우여!

 


* 북한과 중국의 국경 사이에 있는 다리로 이 다리를 통해 경제와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장창영(2003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전북일보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포토[포토]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 촛불집회 이어진 전주시

정치일반김관영 지사, 민주당 단식농성장 방문.."탄핵 힘 보태겠다"

정치일반비상정국 속 민생경제 안정화 노력, 전북특별자치도-시군 협력 강화

정치일반전북자치도, 지방의료원에 79억5000만원 지원, 경영 안정화 총력

정치일반행안부 "대통령실,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 발언요지 미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