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18편을 읽었다. 결심에 오른 작품은 다음 네 편이었다.
‘점멸’(박태원)은, 사건을 차분하게 전개해가는 구성력이 돋보였다. 정신과 의사가 외래 환자의 보호자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의 구도와 문장은 안정되어 있었지만 두 집안의 부부불화도 설득력이 부족했고, 전체적으로 소설적 갈등이 애매하여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거울’(노령)은 1930년대 작가 이상의 시편을 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구도가 성공적이라고 느껴졌다. 유전병 때문에 어릴때 부터 거울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처지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부자갈등이 쉽사리 해소되는 것 등 일부 사건 설정이 작위적이고, 장면묘사가 충실치 못했다.
‘낯선 방문’(전예주)은 어느 젊은 주부의 일상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욕구를 다룬 심리소설로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장점이었다.
전체적으로 잘 완성된 소품이랄 수 있겠는데 오히려 이 점이 불만이었고, 특히 이 작품을 요즘 유행하는 일부 젊은 여성작가들의 ‘존재의 가벼움’을 다루는 내면 소설들과 어떻게 변별시킬 수 있을지 심사위원들은 자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런 방식의 소설의 품격을 유지하는 첫 번째 조건인 문장의 참신성을 이 작품이 충분히 담보해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로드픽션’(로사)은 언어적 감각과 상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서술자의 지문은 물론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그 감각은 생동감을 지니고 있어서, 웬만한 주제는 그 문장력으로 소화해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가족을 팽개쳤던 아버지의 삶에 대한 불만을 ‘수’라는 여성에게 간접적으로 투사하는 기법이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고, 또한 인물의 성격 변환에서도, 주제를 설정하는 시각에서도 상당한 설득력과 균형을 지니고 있엇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복선과 암시도 없이 작품 말미에 낯선 여인이 불쑥 등장하는 것이나 아버지와 ‘나’의 삶이 서로 별개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 등이 그렇다.
심사위원들은 ‘낯선 방문’과 ?00000?을 놓고 논의한 결과 후자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전자의 완성도보다는 후자의 신뢰도에 더 점수를 준 셈이다.
그 신뢰도란 소설의 여러 요소들, 이른바, 문체?구성?인물?주제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교직되어 있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하시기를 빈다.
심사위원 : 이병천(소설가), 임명진(문학평론가,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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