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언어문화연구소 이길재 연구원(38)은 지역의 정체성을 ‘말’에서 찾는 젊은 국어학자다. 그는 경제구조의 변화와 복합적인 사회문화를 담고 있는 지명(地名)을 연구하는 작업이야말로 전주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지름길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지난 2000년말 선배인 김규남씨(41·전북언어문화연구소장, 영국 유학중)와 함께 땅이름을 연구, 조선말부터 현재까지의 전주 모습을 복원한 ‘지명으로 보는 전주 1백년1’을 펴냈던 그가 1년여 만에 두번째 책을 출간했다.
“1권이 조선말 전주부성을 중심으로 전주의 지명들이 만들어진 시기와 사회적 배경을 분석·연구한 책이라면 2권은 1957년 전주시로 편입된 지역, 근현대화 과정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온 전주의 역동성을 지명으로 풀어낸 결실입니다.”
전래 지명의 유래를 찾아 기술, 평면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의 지명관련 서적과는 달리 이 책은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전적 의미의 지명만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명이 안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 배경, 경제적 구조, 그리고 사회적 특성을 모두 담아냈다.
그는 전주의 변천과정을 복원하기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발품과 공력을 들여야 했다. 1권 작업을 함께 했던 선배 김소장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조사부터 자료정리, 집필, 편집까지 모두 도맡았던 덕분이다.
“전주 외곽지역이 대상이어서 도심이 중심이었던 1권때보다 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주민 대부분 농사를 짓기 때문에 만나는 시간을 얻기 힘들었지요.”
어찌 어려움이 이뿐 이었을까. 지난해 11월에는 부친상례를 치렀고,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원고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전주 지명을 조사하면서 우리 말을 새롭게 공부하는 기쁨을 누렸다는 그는 그러나 1914년 일본이 행정구역통폐합을 추진하면서 지명을 쓰기쉬운 한자로 개정, 고운 우리말이 사라진데다, 지금도 잘못된 한자 표기가 마을 이름으로 활용되는 것은 두고 두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명변화에는 개발에 밀려 무시된 소외된 계층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관심 분야는 방언연구를 중심으로 한 사회언어학. 전북대 국문과 재학시절 방언연구회에서 활동한 이후부터 대학원에 진학, 사회언어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온 세월만도 10년이다.
박사학위도 지난 2001년 사회구조적 역학관계에서 언어의 변화과정을 탐구한 논문 ‘인월 지역의 언어변이 현상’으로 취득했다.
“방언 등의 언어는 평면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사회적 요인에 따라 언어는 역동적으로 변하고 그 속에서 규칙성을 찾아내는 것이 사회언어학이지요.”
처음 공부할 때만 해도 “그게 사회학이지 국문학이냐”는 조롱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그는 우리나라 현실과는 맞지 않는 서구학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무조건적인 잣대로 서구이론을 적용하기 보다 우리나라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한 이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참여한 ‘호남문화정보시스템구축’사업에서도 사회언어학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그는 웹상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라도 방언을 연구,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역민의 삶이 녹아 있는 말을 지키는 작업이 우리 삶의 문화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고 믿고 있는 그로부터 우리말의 생명을 읽을 수 있다.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2는…
전주문화원(원장 김광호)이 향토사 발굴 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출판사업. 전주의 역사와 지리, 생활문화를 조감할 수 있는 지명 유래 발굴에 중점을 두고 전북언어문화연구소에 의뢰해 발간한 책이다. 2000년말 첫 권을 펴낸데 이어 1년여만에 거둔 결실이다.
이길재 박사가 1년동안 전주시 행정구역으로 포함된 현재의 시지역을 중심으로 조사, 지명에 얽힌 애환을 찾아 엮었다. 도심권 개발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토박이들의 증언은 물론 문헌자료를 샅샅이 뒤져 전주의 변천과정을 입체적으로 복원한 것이 특징.
‘전주의 변화’ ‘2차 조사 지역’등 2부에 걸쳐 평화동과 삼천동, 효자동, 송천동, 우아동 등 주거지역이 만들어진 시기와 사회적 배경을 자세하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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