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는 기자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자면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주초등학교 1학년 때다.
담임선생님께 세배를 드린다고 나와 친구들은 집을 나섰다. 대충 전주시 다가동 선생님 집 근처를 알고 있어 우리는 쉽게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 이 집 저집 , 이 골목이 그 골목 같고 구불구불 찾아 헤매다 원점으로 돌아오고 대여섯 시간을 헤매다 밤이 어두워 끝내 못찾고 말았다.
정겨움이 묻어나는 설 풍경
다음날 선생님께 우여곡절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지갑에서 우리들에게 10원씩 세뱃돈을 나눠주셨다.
설날 못내 아쉬웠던 마음은 순간 사라지고 우리는 뛸 듯이 기뻤다. 윤명자 선생님!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또 한 분이 계신다.
우리 집에는 해마다 설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아저씨가 있다. 선친이 데리고 함께 일을 하는 정남이란 분인데 사과 한궤짝을 들고 세배를 오신다.
그는 어린 우리 형제들을 놓고 정담을 늘어놓는다. '호랭이 물어가네'란 말을 즐겨쓰면서 자신이 시골서 살면서 있었던 재밌는 얘기,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갔던 아픈 생활고 등등... 우리를 울렸다 웃겼다 한다.
아버지 보다 더 반가운 아저씨 , 그 분이 안오시는 명절은 내게선 상상할 수가 없었다.
설날 하면 어디 이런 기억뿐이랴. 일주일 전부터 설레인다. 다섯 밤, 네밤, 세밤... 우리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 때나 맞아서야 어머니는 새 옷과 고무신을 사주셨기 때문이다. 대중탕에 가서 온 몸에 가무잡잡하게 색을 칠했던 때를 벗기는 연례 행사도 치룬다.
설 전야 , 그날은 환상적이다. 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시장에 나선다. 발디딜 틈도 없는 골목 골목 장 속, 자칫하면 놓치기 일쑤다.
곱게 쌀을 불려 담은 다라이 (바구니)들이 기다랗게 방앗간에서부터 길 바깥까지 넘쳐 늘어서 있다. 가래떡을 빼려면 족히 서너 시간은 걸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지루하지가 않다. 중간 중간에 조금씩 얻어먹는 인절미 맛이란 지금도 침을 꿀꺽 삼킬 정도다.
무상한 세월에 어느덧 중년의 설을 맞는다. 과연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들의 설과 같은 신나는 추억거리의 설을 맞고 있을건가.
꼭 이 날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옷이건 신발이건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제 풍요의 세대. 동네 어른이나 선생님을 찾아 세배한다는 건 옛말이 돼버린 잃어버린 전통의 세대. 선물이 부정 부패의 씨앗으로 인식되는 바람에 ’선물안주고 안받기’운동이 당연시 된 정이 메말라버린 세대.
사람끼리 부대끼며 설풍경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재래 시장을 모르고 사는 개인주의 세대의 어린이들. 기성세대와는 너무도 달라진 세태의 설 맞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5천년 전통의 설은 설이다. 이런 명절을 통해 단군의 후손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심어 줘야 한다.
미풍양속 계승해야
자녀들과 함께 가까운 어른을 찾아 세배 드리자.
넉넉친 않겠지만 세배오는 어린이들의 손에 세뱃돈도 쥐어주고 덕담을 해주자. 이날만이라도 컴퓨터에서 벗어나 재기차기 윷놀이 전통 놀이도 함께 나누자.
그래서 자라나는 세대들도 ”먼 훗날 꿈과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했던 설레이는 설“이었다고 그 다음 세대들에 들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경탁(본사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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