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특검법 처리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대결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제침체, 정치개혁, 북핵문제 등 심각한 국가적 현안들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필자로서는 그 해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진상파악-국익손상 동시고려
특검법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는 대북송금의 진상파악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사건의 진상을 모두 공개했을 시에 초래될 수 있는 국익 손상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으로서는 한나라당이 단독 통과시킨 특검법 공포를 거부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만약에 노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럴 경우 한나라당은 장외로 뛰쳐나가 전면적인 대결을 시도하고, 나아가 수구언론 및 강경보수세력과 연대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정부가 DJ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영남민심을 선동하려 들 것이다. 이는 개혁의 국민적 요구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한나라당내 기득권세력들의 유력한 생존법이다. 그들은 특검법 문제를 내년 총선전략의 일환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여야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고 한국정치는 또 다시 지긋지긋한 싸움판의 정치를 5년 동안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데 특검법에 따라 수사를 강행할 경우에도 노무현정부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민주당의 내분이 가속화되어 자칫 분당사태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둘째, 현대그룹이 곧장 위기에 직면하여 파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럴 경우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현대가 남북관계를 주도해 왔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전반이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다.
셋째, 대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남북간 신뢰관계가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향후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바로 이상과 같은 두가지 상반된 위험요인으로 인해 우리는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두가지 위험 모두를 피할 수 있는 지혜와 절충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특검법 공포 시한이 15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12일 노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는 회담을 가졌다. 이 날 회담에서 한나라당은 기존의 원칙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이제 노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 특검법을 일단 공포하되 곧바로 수정법률안을 제출하여 여야합의로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태도가 요지부동이라면 대통령은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단 특검실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 특검법을 폐기하고 여야합의로 통과된 새로운 특검법하에서 수사를 진행하도록 요구하는 조건부 거부권이 될 것이다.
현재 특검법 재조정돼야
노대통령은 여야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사태는 가급적 피해야 하나, 현재의 특검법은 대북관계의 특수성과 어려운 경제현실을 감안할 때 국익의 관점상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특검법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특검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재조정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첫째, 국외자금의 흐름은 수사범위에서 제외하고, 대북송금자금의 국내조성과정에 대한 수사에 국한하는 것이 옳다.
둘째, 이 경우에도 진상규명을 주목적으로 하고 법적 단죄를 전제로 해서는 안된다. 셋째,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넷째, 이 문제의 신속한 해결이 곧 최대의 국익이라는 관점 속에서 수사기간을 대폭 단축해야 한다.
/이강래(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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