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작품이 서로 넘나들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네”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주제를 제대로 발현했다고 보는데요.”
지난 12일 오후 1시 전주 서신갤러리.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꼭 전시를 끝낸 뒤 여는 품평회 같지만 며칠 앞으로 다가온 전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자리다.
서신갤러리가 기획한 '담론의 공간-욕망에 대하여'전. 초대된 작가는 고보연(32) 곽승호(35) 배용근(35) 오미아(32) 임택준(46) 존톨맨(35)씨 등 6명이다.
이들 앞에 떨어진 과제는 '공간'과 '욕망'. '공간'은 예술작품이 벽걸이 장식용으로 전락(?)한 기존 전시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보자는 기획의도를 담고 있고, '욕망'은 공간과 작품의 관계성을 모색하는 이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코드다.
공간·작품 모두 확장된 시너지 효과
갤러리로부터 숙제 아닌 숙제를 받은 이들은 지난 1월말부터 지금까지 세차례 만나 '예술을 위한 공간인가'와 '공간을 위한 전시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전시장 안에서 직접 작품을 제작하며 조언하거나 열띤 토론을 벌였다.
거리미술과 퍼포먼스 등 자유로운 활동을 해온 임택준·곽승호씨는 지금 전시가 다소 아쉽다는 속내를 비쳤다. 임씨는 "전시장 안이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서로의 작품이 얽혀야 했다”고 했고 곽씨도 전시공간을 부수기 위한 작업이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참여작가 모두 이번 작업이 공간과 작품 두가지 모두 확장되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홍익대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즉흥적인 드로잉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오미아씨는 "갤러리가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맡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선보인 작품은 전시실 모서리를 활용, 두 개의 벽과 한 개의 바닥에 그린 드로잉 벽화. 2차원의 평면회화를 3차원의 공간 속으로 넣어 입체감을 한껏 살린 작품이다.
"평소 갤러리 벽에 그림을 그릴 순 없잖아요. 공간 자체에 무언가를 채운다는 욕구를 스스로 충족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욕망을 느낄 수 없는 '무위자연'을 담아 역설적이죠.”
유일한 외국인 작가인 존톨맨은 갤러리 사무실에 주목했다. 사무실이 전시공간 뒤편에 있는 미국의 갤러리와는 달리 전시공간 전면에 자리해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이지만 미학적으로는 소홀했던 사무실의 미적가치와 리얼리티를 한껏 살려낸 것.
소파 뒤의 벽과 유리, 탁자 등을 캔버스로 활용해 빨깡 노랑 파랑 등 화려한 원색으로 치장한 그는 작품 속에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행복'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필라델피아 출신인 그는 현재 전주대에 영어강사로 출강중이다.
전북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배용근씨는 전시공간을 갤러리 내부에 딸려있는 창고까지 확장시켰다. 성(性)을 주제로 창고 안은 성인용품점, 입구는 여성, 문밖에 놓여있는 남성의 성기는 남자를 비유한 그는 "성을 상품화 하면서도 성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여겨 감추려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욕망, 즐기기 VS 없애기
배씨처럼 성을 주제로 작품을 전개한 곽씨는 "욕망은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벌이는 일상의 행동이 '단순하다'는 것을 설치작품 '포르노 포탈 넷'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 작업은 웹과 미술, 영화, 음악 등을 모아놓은 인디존(www.indibox.com)을 운영하는 그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 호객을 유도하는 스티커나 술집 영수증이 벽면을 가득 채운다. 욕망은 부질없지만 그안에 담긴 재미를 적당히 즐긴다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욕망의 붉은 방'을 내놓은 임씨는 공간에서 공간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욕망을 품는 시발점이라고 이야기한다. 붉은 텐트 안에는 집에서, 작업실에서, 거리에서 가져다 놓은 물건들로 빼곡하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라디오부터 잡동사니까지 다양하다.
시간과 공간을 거치며 지녔던 욕망을 모두 모아놓은 셈이지만 정작 그는 "욕망은 끝없지 채운다기 보다는 버려진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긴장완화의 공간'을 주제로 작업해온 고보연씨는 '수면'을 통해 욕망에 빠지지 말고 잠깐 쉬거나 천천히 가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속삭인다. 영상은 잠의 성질과 형태를 보여주고 수면실에서는 잠에 필요한 보조기구와 정보를 소개,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게 배려했다.
그는 갤러리안의 비상구 아래에서 라면박스를 깔고 새우잠을 자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 보여주는 파격을 선보인다.
'욕망'을 주제로 공간과 작품과의 관계성을 모색하는 이들의 작품전은 19일부터 31일까지 이어진다. 22일 오후 3시에는 '작품을 위한 공간인가''공간을 위한 작품인가'를 놓고 열띤 담론의 장이 펼쳐진다. 새로운 시도만큼이나 기대되는 자리다.
‥‥전시기획자 구혜경씨‥‥
"전시공간에 갇혀 억지로 끼워맞추는 식의 전시가 아닌, 자유로운 형태와 시가의 확장으로 공간을 형성하는 작품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서신갤러리 전시기획자 구혜경씨(32)는 '담론의 공간-욕망에 대하여'를 예술작품과 공간의 관계성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열려온 전시가 작가나 작품에 맞추기 보다는 공간에 맞춰 제도화됐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공간을 적극 활용한 작품제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욕망은 작가들이 작품과 공간의 확장에 고민하는 도구”라는 그는 지역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기획과 작가토론, 전시, 팜플렛 제작 등 기획전의 전형을 제대로 보여주고 이를 문서화해 정착하고 싶은 의지도 담아냈다.
원광대 한국화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젊은 시각전'이나 '디자인-역사 바로 읽기'등 실험적인 전시를 다양하게 기획,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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