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와 놀보는 형제간이다. 물론 놀보가 형이고, 흥보는 아우다. 그런데 '흥보가' 작품 속에서는 꼭 그렇게 등장하지 않는다.
흥보는 가난하다. 형과 같이 살다가 쫓겨나서 가난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에는 흥보가 부자였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흥보는 양반이다. 형에게 쫓겨난 뒤 환자(관청으로부터 가을에 이자를 쳐서 갚기로 하고 봄에 빌어다 먹는 곡식)를 얻으려고 병영에 가면서, 흥보가 호방을 만나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대목에 보면, "내가 반남 박 가 양반인디……"라는 부분이 있다.
호방도 흥보에게 존대를 한다. 글도 배웠다. 재산은 없으면서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꼴을 볼 수 없다고 놀보가 쫓아낸다. 그러니까 흥보는 가난한 양반, 심봉사와 같은 몰락 양반이다.
그렇다면 놀보도 당연히 몰락 양반이어야 한다. 그런데 놀보는 흥보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부자지만 글은 모른다. 놀부 박 타는 데 보면, 첫째 박에서 나온 강남 노인이 놀보 아버지의 상전이다. 놀보 할아버지 덜렁쇠와 아버지 껄덕쇠는 그 노인의 노비였는데, 병자년에 과거를 보려고 집을 비운 사이에 도망을 했다는 것이다.
놀보는 자기 근본이 탄로날까 봐서 이 노인에게 이만 천 냥을 바치고 속량(노비가 돈을 내고 노비 신분에서 빠지는 일)한다. 놀보는 분명히 도망 노비 출신인 것이다. 돈을 벌어서 이젠 부자가 되었고, 그럴 듯한 집안과 사돈을 맺어 양반 행세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은 천민인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형제라면 신분이 같아야 마땅하다. 그러니 흥보가에 나오는 이들은 형제로 나오지만 실은 형제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이들은 조선조 후기에 등장했던 두 가지 인간형을 대표한다. 놀부와 같은 인간형은 조선조 후기에 등장했던 '요호 부민'(서민 부자)이다. 신분은 낮으면서도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 두 인간형은 조선조 후기를 같이 살아갔던 대표적인 인간형들이다.
이들은 조선조 후기 사회의 모순 구조가 탄생시킨 문제적인 인간들이다. 양반이면서 부자이거나, 가난하면서 천민인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토대 위에서 조선조 사회가 지탱돼 왔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흥보와 놀보 같은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인간형들이었고 이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다. [흥보가]는 바로 이러한 갈등을 다룬 작품인 것이다.
/최동현(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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