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1 17:39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김병기교수의 한문속 지혜찾기] 미치게 핀 꽃

 

 

江上被花惱不徹이나 無處告訴只顚狂이라.
강상피화뇌불철     무처고소지전광

 

강둑이 온통 꽃으로 덮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구나. 이 좋은 풍경을 알릴 곳도 없으니 단지 홀로 미쳐 날뛸 수밖에.

 

두보의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강가를 홀로 거닐며 꽃을 찾다)》7절구(絶句) 시 중 제1수의 처음 두 구절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한 시가 있을까? 첫 번째 구절의 '뇌불철(惱不徹)'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묘하다. '惱'는 '괴로워한다'는 뜻이다. '不徹'은 '통하지 못하다, 벗어내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惱不徹'을 직역하자면 '번뇌를 벗어낼 수가 없구나'라고 할 수 있다. 번뇌를 벗어낼 수가 없다니 이게 무슨 뜻인가? 이것은 곧 '어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는 뜻이다. 시인 두보는 온 강둑을 뒤덮고 있는 꽃을 보고서 그 아름다움에, 그 풍성함에, 그 장관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 벅찬 감격을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누구에게라도 빨리 알리고, 그 사람의 손을 끌고 나와서 함께 보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니 어찌하랴! 혼자 미쳐 날뛸 수밖에.

 

시어가 나무 생동적이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꽃이 한창이다. 언덕배기에 흐드러지게 핀 철쭉이 너무 아름답다. 그 꽃을 보며 사람들만 미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핀 꽃 자신도 이미 미쳐버린 것 같다. 정말 미친 듯이 피었다. 아름다운 계절, 이 꽃들의 넘쳐나는 웃음과 행복이 우리의 가슴 안으로 그대로 옮겨왔으면 좋겠다. 우리 자신이 꽃이 되는 날, 그런 웃음, 그런 행복이 가슴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被:덮을 피  惱:괴로울 뇌  徹:통할 철  告:알릴 고  訴:하소연 할 소  顚:미칠 전  狂:미칠 광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email protected]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