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5일부터 5월4일까지, 신록의 물결속을 거침없이 지나온 열흘간의 영화여행 '제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자유·독립·소통'을 내세운 전주영화제는 올해 보이지 않는 고비를 넘어서 아주 의미있는 성과를 얻었다. 여전히 '대안'이라는 화두를 중심축에 걸어놓고 예술영화제를 지향한 영화잔치가 그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정체성과 당위성을 확보한 것.
시민들은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아냥 대신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영상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마니아들도 '꼭 가봐야 될 축제'로 그 인식을 넓혔다. '낯선영화·어려운 영화'로 닫아두었던 시민들의 시선이 열리면서 영화제의 필요성을 묻는 볼멘소리도 줄었다.
순수 유료관객은 6만명을 무난히 넘어섰고 좌석 점유율도 66.2%를 기록했다. 또 한국영화가 소개된 야외상영장도 성황을 이뤘다. 축제일이 전년보다 사흘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무적인 일이다.
민병록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무엇보다 시민들이 국제영화제의 성격을 이해하고, 봉사자로 참여하려는 의식전환이 이루어진 것이 큰 성과다”고 밝혔다.
행사 운영면에서도 영사사고·티켓 전산불통 등 관객들을 짜증나게 했던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 빈도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자고나면 국내 어디선가 열리는 그저 그런 영화제가 아닌 전주만의 특색있는 영화잔치로서 그 명성을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대중과의 소통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홍보전략이 없어 일반 시민들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던 점이나 한국영화가 축제의 변두리로 밀려나 존중받지 못한 점도 아쉽다.
조직이 안정된 것도 성과가 될 수 있지만 이제 네번째 행사를 마친 만큼 더이상 체험에 의해 축적되는 대처능력이 아닌 전문성 향상의 필요성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영화제가 중대한 전환점을 넘어선 만큼 이제 지역 영상산업 발전과 연계시킬 수 있는 집약적인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는데도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 다양성 속 집중력 돋보여
전주가 올해 선택한 35개국 1백70편의 영화는 대부분 상업적 주류에서 비켜나 있어 대중과의 소통보다는 '새로운 것과의 소통'이라는 측면이 강조됐다. 그리고 그 성과는 충분했다.
또한 일반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킨 작품도 적지않아 축제의 균형을 잡는 일에도 합격점을 얻었다. 화제의 애니메이션 '애니매트릭스'와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의 '미안해'·'치킨 포에츠'·디지털 스펙트럼 부문의 '켄파크'·어린이 영화궁전의 '개구리 왕자'등 상당수의 작품은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특히 인권문제를 새로운 형태로 조망한 개막작 '여섯개의 시선'과 폐막작 '파 프롬 헤븐'에 대해서는 '전주의 탁월한 선택'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올해 닝잉과 로랑스 페레이라 바르보사라는 두 여감독, 그리고 브라질의 글라우버 로샤감독에 주목한 점도 성과다.
섹션이 늘어난데 따른 영화제의 정체성 문제에 관해서는 국제영화제로서 '다양성속의 집중력'이라는 말로 답변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주영화제의 간판 '디지털 삼인삼색'은 운영방법 개선의 논란을 남겼다.
디지털은 이제 더이상 대안이 아니라 영화의 주류로 들어섰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런만큼 명망성으로만 디지털 실험을 맡겨서는 안된다. 적어도 디지털 경험이 있는 작가를 선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작품들은 디지털 초보(?) 감독의 지극히 개인적인 실험과 탐색에 왜 주목해야 하는지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평론가들은 화를 냈다.
인디영화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다큐멘터리 비엔날레 섹션이 다큐의 영역을 넓혀놓는데 성공했지만 국내 단편영화 감독들을 끌어안지는 못했다.
올해 전주가 새롭게 선보인 소니마주와 필름마켓, 그리고 지프마인드는 시도 자체로서는 의미가 있었지만 성과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 관객 증가, 행사진행 안정
행사운영은 전반적으로 안정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사사고도 지난해보다 줄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개막식도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도입한 '지프(JIFF)패밀리 카드'는 3일까지 총 4천3백41명이 가입, 지난해(2천1백52명)에 비해 가입자가 2배가량 늘었다. 전체 관객의 50%정도인 3만여명이 패밀리 카드를 이용해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드러나 그 성과를 입증했다.
그러나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영사사고가 줄을 이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관객과의 접점에 있었던 2백40여명의 자원봉사자들도 영화제의 얼굴로 스탭과 더불어 행사 운영에 큰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상황대처 능력과 인원배치의 효율성·스탭과의 유기적 협력등의 부문에서는 여전히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보다 체계적인 사전교육과 운영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개막을 앞두고 불어닥친 사스공포로 인해 이란 바흐만 고바디등 몇몇 감독들이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지만 장 클로드 루소와 닝잉·로랑스 페레이라 바르보사·헤르츠 프랑크·츠치모토 노리아키 감독등 60여명의 해외 게스트들이 전주를 찾았다.
그러나 전주에 온 세계적 거장들과 관객들의 만남은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느낌을 제대로 소통해내지 못한 일부 통역, 그리고 일부 감독들의 성의없는 자세도 입줄에 올랐다.
홍보컨셉 부재는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할 대목이다. 올해 국내영화제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영화가 상영됐지만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홍보전략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공식적으로 23억원이 책정된 예산규모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주의 예산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어정쩡한 규모. 세계적 권위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부산과 달리 전주만의 특색을 지향한다면 예산의 거품은 오히려 영화제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할 수도 있다.
영화마당 곳곳에 배치된 파티라는 이름의 구색맞추기 행사들도 이같은 측면에서 되짚어보야야 한다. 이와함께 영화제가 지역의 생산적 요소와 유기적으로 연계됐는지도 고려해 볼 일이다.
◇ 행사집중력 높인 상영관 배치
올해는 축제 공간을 영화의 거리와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으로 압축, 행사의 집중력을 높였다. 영화의 거리가 활성화되는 시너지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전주의 공간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획력과 주민들과 연계, 영화의 거리를 확실하게 부각시키는 테마가 아쉬웠다.
상영관 시설은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일류 시설에 적응돼 있는 마니아들에게는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영화의 거리에 넘쳐난 차량과 관련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과 시의 적극적인 홍보가 과제로 남았다.
이와함께 작품성이 뛰어난 예술영화만을 엄선해서 상영하는 전용관을 건립, 지역의 영화관람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종표·임용묵·안태성·최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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