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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땅과 사람들] (1)판소리와 전북

 

 

전북은 판소리의 탯자리, 빼어난 명창들이 여기에서 비로소 섰다.

 

판소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음악이다. 판소리의 발생이나 기원이 아직도 갖가지 이설속에서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하더라도 판소리는 이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반영하고 바로 그 바탕 위에서 자라온 문화의 결집체다. 판소리는 사람들의 저 가슴 깊숙이 자리한 우리 정서의 밑바닥을 헤집어 들추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한 문화 자산이지만 그것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판소리는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쳐오면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소외되고 무시당해왔다. 다행히 판소리의 미학적 가치와 문화사적 의미를 주목한 연구자들과 예능인, 동호인들의 소박한 활동에 힘입어 판소리는 다시 살아났고, 이제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음악유산으로 섰다.

 

판소리는 지금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북은 세계로 나가는 판소리의 탯자리다. 이 땅의 사람들은 판소리를 어떻게 지켜왔고, 오늘의 판소리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

 

판소리의 땅, 그 역사와 판소리를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 기획물은 판소리연구가 최동현 교수가 여는 첫글에 이어 판소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신명과 아름다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1)판소리와 전북

 

국문학자 조동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말을 알아야 하며, 둘째, 김치 맛을 알아야 하며, 셋째, 판소리를 감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화 유산은 고려 상감청자와 판소리뿐이라고도 하였다. 물론 이들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때 하잘 것 없는 천민의 예술로 취급되어 사멸지경에 이르렀던 판소리가, 이제 유네스코 '세계 구전 무형 유산 걸작' 선정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판소리가 가장 한국적이며, 우리 조상들이 가꾸어온 문화 유산 중에서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가장 훌륭한 유산 중의 하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라북도는 이런 판소리를 만들고 가꾸고, 유지해온 자랑스런 고장이다. 전라북도가 예향이라는 말을 듣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판소리 때문이다. 한 편에서는 '예향'이라는 이름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발전이 지체된 이유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될 때, 예술은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고장이 예향이고, 판소리의 고장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의 질이 사실은 경제적으로 잘 사는 지역의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 고장은 어떻게 판소리의 고장이 되었는가. 그 이유를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술이 일단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에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 고장이 곡창으로서 일찍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판소리 속에 담겨진 내용이다.

 

판소리는 조선조 후기에 당시의 가장 절실한 사회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봉건체제의 모순을 드러내고, 근대적인 가치를 담아내어 그 실현 가능성까지를 보여 주었다. [춘향전] 같은 경우 신분제도의 모순을 드러내고, 인간해방의 근대적 가치가 실현되는 것을 어사출도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고장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 속에 안주한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진취적인 자세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판소리의 고장에서 조선조 말 가장 강렬한 반봉건 농민 운동인 갑오 동학운동이 일어난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판소리를 만들어낸 우리 고장 사람들은 판소리를 가꾸고 지키는 데 아주 열성적이었다. 예술은 이를 기꺼이 구매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더구나 판소리처럼 장기간의 수련이 요구되는 예술의 경우 든든한 후원자가 없다면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고장에는 판소리를 위해 기꺼이 투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신재효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재효는 관약방과 호장을 하면서 축적한 부를 판소리를 위해 사용하였다. 신재효 문하에서 수많은 명창들이 배출된 것은 이러한 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우리 지역에서는 판소리를 그냥 안방에서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공동체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전주대사습놀이'가 그것이다. 소리꾼들은 대사습에 참가하기 위해 전주로 모여들었다. 우리 고장이 판소리의 중심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축제는 소리꾼의 기량을 평가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공동체의 단결과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판소리에 대한 이러한 애정은 전통 예술이 사멸지경에 이르렀던 시기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전통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다.

 

1975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부활은 우리 지역 사람들의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케 한다. 마침내 2001년 전주에서는 '세계소리축제'를 열게 되었다. 판소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판소리는 우리 지역의 문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사설 여섯 바탕은 한국 문학사상 불후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판소리 사설을 대량으로 보급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출판은, 전주를 고전소설 출판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전주에서 출판된 고전소설들은 예술적으로 빼어나면서도 풍부한 민중성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고장 사람들은 판소리를 만들고 가꾸어 오면서, 판소리를 통해 우리들의 정체성을 확립해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경향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고장 사람들이 판소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긍심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 고장이 진정한 의미에서 판소리의 고장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하겠다.

 

/최동현(군산대 교수, 판소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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