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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문화 전통 빛나는 문화유산…장판각의 '완판본'

 

 

전북의 기록출판문화는 그 뿌리가 깊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고 있는 전주 경기전의 전주사고가 그 뿌리를 증명하는 대표적 증거라 한다면 또 한갈래의 증거는 전라감영에서 제작되었던 목판(木版) 책판 '완판본(完版本)'의 존재다.

최근 여러 통로를 통해 보존실태가 고발된 '완판본'은 특히 이지역 출판문화 전통의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물론 같은 시기(1700-1800년대)에 전라감영 뿐 아니라 전주의 다가천변이나 동문 일대에 서포(책을 발간했던 곳)가 활성화되어 있었고, 그에 앞선 1600년대에 이미 태인에서 출판활동이 이루어졌지만 전라감영에서 제작된 책판 4천여점이 오늘에까지 보존되어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크다.

'완판본'은 전라감영에서 간행된 판본을 이른다. 전주의 옛 지명이 완산이었으므로 완판본이라 하였는데, 당시 전라감영에서 책을 출판할 때 사용한 책판이 바로 전주 향교의 장판각(藏版閣)에 보관되어 있는 4천여판의 '완판본'이다.

모두 목판인 이들 완판본은 당시 사대부들이 즐겨 읽었거나 국가가 읽히려 했던 책들이다. 당시 전라감영에서는 60여종의 책이 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주향교의 기록으로 보자면 지금 남아 있는 판본 중 명확히 분류되어 있는 것은 10여종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자치통감강목이 1,780판으로 가장 많고, 주자대전(745), 율곡전서(468), 성리대전(561), 사기(475), 동의보감(141)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당초 이 완판본은 전라감영 소유였으나 1866년 고종 3년에 전라관찰사 조한국이 향교의 판고에 이관 보관해오다 그후 판고는 없어지고 판본만 보관되어 왔다.   
장판각은 지난 1987년 완판본 책판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 지은 공간이다. 전주향교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 보관된 책판은 4,290판에 이른다. 그러나 장판각의 규모는 대략 20여평. 판본 한장의 크기가 60*30CM정도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어떤 형태로 보관되어 있을까를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여기 보관되어 있는 판본은 모두 목판본에 앞뒤로 각을 해 앞뒤판을 돌려 찍을 수 있게 제작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원형은 양옆에 따로 나무를 잇대어 손잡이 겸 판형을 보존하기 위한 '마구리'를 붙인 형태다. 그러나 지금 보관되어 있는 판본 대부분은 '마구리'가 떨어져 나가 있다. 협소한 공간에 보관하다 보니 공간을 좁히려고 마구리를 모두 떼내어 버린 결과다.

대충 분류표를 붙여 놓았지만 기초자료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쌓아놓듯 보관되어 있는 현재의 상태로서는 분류나 판수의 정확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장판각의 '완판본' 보관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87년 새로 지어진 장판각에 자리 잡은 이후 이들 완판본 보존을 위해 행해진 것은 2001년 전주시의 문화재 담당부서가 주관한 훈증작업(해충을 없애는)이 전부다. 장판각은 당초 완판본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목판의 보존을 위한 어떤 시설도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보존상태의 심각성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전주시는 지난 2000년 전북도에 장판각 '완판본'의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었다. 그러나 도문화재위원회에서는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지만 각 종별 목판의 전체 수량이나 결판 수 등 구체적인 기초작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문화재 지정이 불가하다며 목판의 보존 관리와 함께 기초조사를 선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후 전주시의 문화재 신청을 위한 시도는 없다. 기초자료 조사나 목판의 보존을 위한 작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썩어가고 있는 목판본 보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전북대 이태영교수는 "전주 향교의 목판본에 관한한 더이상 할말이 없다. 이미 수년전부터 목판본 훼손의 심각성은 충분히 제기되었고, 여러차례 자치단체에 기초조사 작업을 위한 대책 마련을 제안했었지만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장판각의 목판은 출판문화의 역사를 증명하는 사료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 목각의 서체가 지닌 빼어난 아름다움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미려함과 품격을 갖춘 완판본의 서체를 활용해 다양한 문화상품 개발이나 문화코드로 활용하라는 제안도 이어지고 있다.

"200여년 세월을 건너온 장판각 '완판본'이 더이상 방치된다면 치명적인 훼손을 회복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썩고 문드러져 형태도 알아 볼 수 없게된 후에 어떤 획기적인 대책이 마련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연구자의 자조 섞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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