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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중의 문학편지] 이성복의 새 시집을 읽는 기분

 

 

이성복 시인이 10년만에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을 냈다. 내 눈에 이 시집의 말들은 여전한 빛으로 반짝이고 영감으로 풍성하다. 그리고 이성복 시의 특징인 아슬아슬함도 여전하다. 헤아릴 수 없는 결과 울림을 지닌 말들이 입체적인 의미를 더하는 것이다. 오랜 만에 그의 책장을 넘기며 내 손끝도 긴장으로 흔들린다.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가 나온 1980년, 나는 대학 1학년이었다. 1학년이 으레 그럴 테지만 나는 그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굵직한 충격들 가운데 잊을 수 없는 하나가 이성복의 시를 읽은 일이다. 나는 어떤 글에서 그의 첫 시집을 '새로운 시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것이었다고 적은 적이 있다. 이후 시를 공부하는 젊은 시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의 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소문은 조용한 가운데 신비롭기조차 하다. 그러나 세상에 신비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의 어떤 처신이, 그에게 호감과 존경의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그렇게 비칠 뿐일 것이다.

첫 번째 시집과 그 자장 안에 있는 두 번째 시집 '남해금산'에서 일군 성취에 이구동성으로 열광했던 1980년대의 독자와 평자들은, 1990년대에 나온 세 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 네 번째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시작이 드높고 화려했던 예술가가 걷는 고달픈 강박의 길을 그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빛나는 출발은 역설적으로 보자면 예술가에게는 불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특히 침묵의 평가를 받았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도 좋게 읽었다. 적어도 내 느낌을 잣대로 삼자면,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와 같은 긴장감으로 평생 시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시인이 요절시인이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어떤 독자들에게 이성복의 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특히 서점의 잘 보이는 자리에 깔린, 꽃그림으로 장식된 시집만 읽어온 사람에게는. 하지만 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어렵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이른바 <본격 시> 를 읽기 위해 단계적으로 훈련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복 시인의 시는 <본격 시> 이다.

이 시집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나는 뒤에서부터 읽기를 권한다. 뒤로 갈수록 쉽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들은 시집 앞쪽에 공들여 쓴 작품들을 배치한다. 역작은 읽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마디마다 고심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인의 먼저 나온 시집을 이 기회에 읽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요사이 시를 못 쓴다고 알려졌던 <흘러간 시인> 의 새 시집을 반기면서, 세속적 호강과 거리가 먼 길을 자초하여 걷는 진짜 시인과 재회하게 되어 또한 기쁘다. 새 시집에 변산을 다녀간 흔적이 있어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이러면 어쩌나, 낸들 어쩌나 찰랑이는 채석강 연안 바닷물이 쨍알쨍알 보채는 나를 달랜다 […] 이러면 마냥 발길 떨어지지 않는 달래며 바다는 속이 탄다 검은 오지항아리 속 자글자글 끓는 오늘도 난 바다에게 짐만 되었다> ([76 이러면 어쩌나, 낸들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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