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는 파편적 언어를 통하여 재기를 발휘하려는 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물에 대한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 터득되는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순간적 재치로 촉발되는 시의 세계는 자칫 유머와 윗트로 커버하려는 속성을 띠게 되고 그것은 때로 독자들을 우롱하는 속임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시가 쏟아지는 시대, 그러나 진정한 시인은 만나기 쉽지 않은 시대에 그 자신 시인이면서 평론가인 우석대 송하선교수(65)는 명시(名詩)를 이렇게 정의한다.
송하선교수의 문학평론집 '시적 담론과 평설'이 국학자료원에서 나왔다. 이미 '서정주 예술언어'를 비롯한 여덟권의 저서를 통해 문학비평과 이론적 논리를 탄탄하게 구축해온 송교수의 이번 저서는 오랜기간동안 주된 문학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온 미당 서정주와 신석정시인의 시세계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해설한 책이다.
최근 몇년동안 학술지나 시집 등에 쓴 비평과 서정주 신석정 시인의 대표작 해설을 함께 엮어놓아 본격적인 문학비평서나 이론서로 읽혀지기 보다는 저자의 문학적 사상과 이론을 다양한 방법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총서.
현대시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점한 초정 김상옥이나 백석과 같은 시단의 거목부터 지역시단에서 활동하는 정병렬과 이소애의 시세계를 분석한 시평이 있는가하면 지난해 '문예운동' 가을호에 발표, 문단에 논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고은시인의 '미당 담론에 대한 담론'도 실었다.
눈길을 끄는 글은 역시 '미당 담론에 대한 담론'. 목청을 높이지 않고 사유하듯 철학적 깊이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세계와 역시 사색적인 글쓰기의 평론을 발표해온 저자가 의외의 공격적 논조로 일필한 이 글은 당시 화제를 모았던 담론이다. 미당이 작고한 후 '창작과 비평'에 발표했던 고은의 '미당담론'에 대한 저자의 도발적 담론은 궁극적으로 시와 시인은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제기한다.
고은시인의 글 부분 부분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도리'로 고은의 스승에 대한 무례를 질타하는가하면 미당의 시세계와 고은의 시세계를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고은의 시를 공감대를 확보하지 못하는 난삽한 시로 폄하하기도 한다.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시란 무릇 인생과 사물에 대한 깊은 사색과 명상에서 터득되는 세계'라는 것. '시적 자아의 진실성에 문제가 있다'(고은의 '봄밤의 말씀')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 저자는 '난삽한 시의 속성은 우선 그 표현이 까다롭고 파편적 언어를 통하여 재기를 발휘하려 노력한다'며 파편적으로는 재기가 빛날 수 있지만 유기체적 통일성이 결여될 수 밖에 없고 내재율면에서 흠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은유적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저자의 문학적 깊이는 미당과 석정의 대표시 해설에서 전해진다. 시는 독자에게 전해지는 그 자체로 읽혀지기 마련이지만 그의 해설에 기대어 감상하는 미당과 석정은 시의 진정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준다.
기왕에 발표되었던 담론과 시평을 모아냈지만 마치 새로 발표되는 글처럼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표현과 방법으로 읽어낸 시적 담론의 모음인 덕분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문집의 의미도 갖고 있다. 최근에 발표한 시집 '새떼들이 가고 있네'와 함께 잇대어 펴낸 이 책의 부록으로 엮어진 저자의 글과 시에 대한 또다른 문인들의 글은 '송하선의 문학'을 만나게 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