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내리듯 쏟아지는 도내 대형축제와 문화행사들. 꽃피고 열매 맺으면 열리는 축제들까지 꼽으면 숫자 새기도 민망하다. 이런 대형 이벤트들은 누가 어떻게 꾸려 가는 것일까. 연출·감독·사무국장·기획실장·기획팀장·이벤트팀장…. 다양해지는 이벤트 덕에 이들은 일복이 터진 셈. 그러나 '일은 많지만 사람이 없다'는 탄식이 문화계의 오랜 화두다.
"문화는 일이 아니라 삶이죠. 삶의 흔적과 의식의 표현이 층층이 쌓이고 묵으면 문화가 됩니다. 기획도 스스로 가꾸는 즐거움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기획자도 마찬가지. 문화기획자가 아니라 '문화일꾼'이라고 말하는 산조예술제 오종근 사무국장(42)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을 준비하는 씨앗과 거름이라는 생각이 앞서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기획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을 먼저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판의 정신'을 강조하는 그다운 생각이다.
"길들여지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같죠. 판에 끼여들거나 기댈 생각보다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 곳이 아닌 내 주위에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든요”
일반인에게 여전히 생소한 '문화기획자'는 축제·전시·박람회·음악회 등 문화산업 시스템을 전문으로 기획하는 사람과 극장·박물관·예술단체의 컨설팅 매니저, 인력관리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들을 일컫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감독·출판·미술 등을 하다 우연히, 혹은 잘 안 풀려 옆길로 새는 분야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최근 '문화기획자' 영역에 뛰어든 젊은 인재들이 늘었다. 21세기 문화환경도 이들의 역할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부터 도내에서 ㈔마당이 문화인력을 키워내기 위한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선보여 문화계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있고, 대학에도 문화기획을 공부 할 수 있는 정규교육과정이 개설돼 앞으로 이 분야의 양·질적 발전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공연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소리축제 임진택 총감독(53)·전통문화센터 곽병창 관장(44)·전주풍남제 안상철 사무국장(45)과 황토현문화연구소 신정일 소장(48), 심홍재 행위예술가(41), 혼불기념사업회 김병용 사무국장(38), 인터넷신문 군산타임즈 이근영 편집장(36) 등이 도내 문화기획자의 한 축을 형성한다. 문화기획자란 틀에서 활동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이들의 행보는 그 범위에 있다.
김승민(36)·김병수(35)·성기석씨(33)는 최근 주목받는 젊은 문화기획자. 세세하게 따지면 ㈔마당 김승민 기획실장과 영화와 이벤트 등 문화행사 경험이 많은 성기석씨는 문화산업시스템 매니저, 도시계획을 꿈꾸는 김병수씨는 시티마케팅 매니저에 가깝다. 2001년 소리축제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한 강준혁씨(53)와 소리문화의전당의 서현석 전(前) 예술감독(49) 등은 이 지역을 거쳐간 대표적인 문화기획자로 꼽힌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문화기획자의 기본 조건은 무엇보다 인간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문화일꾼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도 사람이다.
하지만 아직 이들을 한데 엮을만한 틀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아쉽다. 체험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고, 기록을 남기고, 인맥 그물을 만들어 후배들을 끌어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되자고 손잡을 날은 언제일까.
"지금 여건은 넉넉하지 못하죠. 그렇지만 가능한 똘똘 뭉쳐야 우리 문화가 새롭게 꽃피울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함께 가야할 길이니까요.”
좀 더 많은 동지들을 만나고 싶다는 '문화일꾼'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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