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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38년간의 '산성과의 전투적 연구' 결실

 

동고산성 미륵산성 두승산성 성미산성 위봉산성... 고대부터 조선에 이르는동안 축조되었던 산성들이다. 산성은 서로 만들어진 시기가 다르다하더라도 주된 기능은 외적으로부터 임금과 백성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목적에 있다. 교통이 발달한 지금은 전국방방곡곡 골짜기마다 자동차 바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지만 험악한 산세에 의지해 만들었던 산성은 여전히 땀꽤나 흘리고, 발품 꽤나 팔아야만 이를 수 있다.

 

고고학자 전영래교수(77, 한서고대학연구소장)가 '전북 고대산성조사보고서'를 펴냈다. 전북지역 각 시군의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산성을 현장답사하고 연구한, 현장보고서다.

 

"고고학에 눈뜬 것도, 내나라 역사와 문화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산성을 통해서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의 반절을 산성 연구에 바쳤으나 이루지 못한 작업이 더 많아요. 그러니 마음 빚으로 남은 아쉬움이 더 커졌지요."

 

오랫동안 소망해온 연구작업의 결실을 얻은 원로교수의 소감은 뜻밖이다. 분량만 6백70여쪽. 산성마다 실측도와 지형도, 위치도, 그리고 사방 팔방에서 찍은 사진까지 꼼꼼하게 담아낸 이 두터운 보고서로도 마음 홀가분해지지 못한 저자는 훌쩍 지나간 세월에 회한이 더 짙었다.

 

"처음 산성조사를 시작한 것이 65년, 2000년에 마지막 조사작업을 했고, 올해 책을 펴냈으니 38년이 걸린 셈이군요. 전북지역의 1백50여개의 산성 중에서 80개를 이 책에 수록했는데, 좀더 적극적으로 매달렸었더라면 다 할 수 있지 않았겠어요."

 

고고학에 바쳐온 세월 40년. 재야학자의 고독한 작업을 꿋꿋이 지켜오면서 남다른 자신감과 확신을 잃지 않았던 전교수의 전투적이기까지 했던 열정은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전 녹내장 수술을 받은 이후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버린 탓이다. 그동안 자료 조사부터 사진을 찍고, 컴퓨터로 편집하는 일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해냈던 그로서는 자료를 읽어내는 일조차 불편했던 지난 1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전북 고대산성조사보고서'는 이 힘든 시간속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수록된 산성 80개는 모두 전교수가 발품 팔아 찾아내고 조사한 성과물. 38년 세월이 그 안에 녹아있다. 그의 연구는 '산성학'의 기초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형식학적인 산성 구조의 모델이 거의 제시된 것이라든지, 산성의 변천과정과 유형, 형식 등에 대한 꼼꼼한 분석은 이 책이 갖고 있는 큰 가치다.

 

"산성은 고고학적 역사학적인 배경은 물론, 정치사적 상황을 뒷받침 하는 매우 중요한 사료지요. 그런데도 이 분야의 연구 작업은 미진해요. 유사 이래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옛 무덤과 산성 뿐인데 이들을 도외시하거나 무시한다면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은 차단되지 않겠어요."

 

산성을 조사하면서 그가 얻어낸 고고학적 성과물도 적지 않다. 70년대 고고학계의 화제가 되었던 '청동기 문화의 연원 논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증거도 그 중의 하나. 그는 당시 치열하게 전개된 지상 논쟁에서 "나는 고고학을 하기 위해 권위주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와 싸우기 위해 고고학을 하는 것이다"고 맞섰다. 그 반향은 일본에까지 전해질 정도로 뜨거웠다.

 

"고고학은 코끼리 문답이예요. 부분적인 것으로부터 전체를 읽어나가는, 이를테면 복원적인 고찰이 이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이지요.”

 

1년전쯤 그는 전주 고사동 기린오피스텔에 연구실을 마련했다. 96년 대학 강의를 마감한 이후 곁방살이로 전주문화원 한쪽을 얻어썼던(?) 그로서는 더없는 행복이다.

 

'눈이 침침하고 몸도 마음을 따라 주지 않지만'그동안 발표했던 수십편 논문을 정리하는 일만으로로 하루가 짧은 전교수에게 계절은 없다. 늦여름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넓지 않은 연구실 사방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책들이 열기를 더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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