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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속 지혜] 시비는 말해서 무엇하랴

 

단지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바라볼 뿐, 사람의 시비는 말하지 않으려네.

 

但見花開落하고 不言人是非라

단견화개락 불언인시비

 

며칠 전 전주 시내의 어느 표구사에 들렀다가 본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선생의 작품에서 쓰여져 있던 글이다.

 

김태석 선생은 항일시대에 주로 활동했던 서예가이자 전각가로서 특히 전서(篆書)를 잘 썼고 전각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전각계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但見花開落, 不言人是非!” 정말 운치도 있고 의미도 깊은 글이다.

 

작품의 한 켠에는 "유당(酉堂)에게 준다”는 쌍낙관(雙落款)이 되어 있었다.

 

유당 역시 항일시기에 주로 활동했던 전주출신의 서예가로서 성재 김태석보다는 후배이다.

 

성재나 유당이 살던 이 때만 해도 선배가 후배에게, 혹은 스승이 제자에게, 이렇게 좋은 글을 써서 선물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리고, 결혼이나 회갑 등의 잔칫날에도 으레 시 한 수에 글씨 한 줄이라도 써서 마음을 전달하곤 하였었다.

 

얼마나 운치가 있는 선물인가?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런 식의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

 

잔칫날이면 그저 봉투 하나씩 들고 가서 술이나 밥을 잘 얻어먹고 오면 그만이다.

 

운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홀로 숨어 자연과 더불어 살며 단지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바라볼 뿐, 시비는 물론 사람 자체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그런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벌써 은행잎가에 노란 테두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다시, 지는 낙엽이나 바라볼 일이다.

세상 시비는 말하여 무엇하랴!

但:다만 단 開:열 개 落:떨어질 낙 是:옳을 시 非:그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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