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믿겠다? 당장 죽음이 눈앞에 있다면…
-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전도생활
몇 년 전 어느 날의 일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10년 정도 같이 근무했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병에 걸려 요양하게 되었고, 난 그 분과 이웃에 사는 관계로 자주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을 만날 때마다 빨리 복음을 전해야지 했는데 막상 그 분을 만나면 그 동안 살아온 얘기와 그 분의 얘기를 들어주는데 더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 날도 역시 복음을 증거할 기회만 살피다가 그냥 헤어졌고, 오후 늦은 시간에 서울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게 되었다. 그 날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분의 집에 상중(상중)이라는 등이 달린 것을 보고 가슴을 치면서 후회했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 분의 죽음을 확인하고 너무도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만큼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통곡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그 분의 집에 찾아갔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고인의 영정을 쳐다보고 있는데, 마치 그 고인의 영정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선생, 왜 내게 진작 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어? 조금 일찍 나에게 말해주면 안 되었나? 왜 말해 주지 않았어?'라고. 영정 속에서 나를 엄하게 나무라는 듯한 음성이 계속 들렸다.
신앙을 가진 사람 중에는 전도를 해본 경험을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개인으로든, 그룹으로든 한 두 번씩은 전도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가정에서도 안 믿는 식구들을 보면 자주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나중에 믿겠다는 말이다. 당장 믿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나중에 믿겠다고 미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 믿는 일이 얼마나 긴박한 일인가를 잘 모른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듯 싶다.
자식의 빚 때문에 생활고 때문에 그리고 내 생각에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위치의 사람들까지도 자살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내 주위엔 잘못하면 이렇게 기회를 완전히 놓칠 위험에 있는 사람은 없는가?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오늘밤, 내일이라도 그 사람에게 죽음이 임한다면,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그 사람의 완악함이 문제라기보다 우리의 침묵이 더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예수의 이름은 오늘도 능력이 있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힘이 있다. 십자가의 도는 오늘도 어두운 영혼을 꿰뚫고 빛을 비추어 준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복된 존재이며 사랑 받는 존재인가를 깨달아 자기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같은 방법으로 전할 때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이용호(전주 서신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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