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가 어느 땐고? …. 입이 있어 말하는 짐승들이라면 서로 이르되, '대도무문(大盜無問)'의 시대라. 성군(聖君)이 나라를 열어 언필칭 연호(年號)를 선포하는 경우가 더러 있으나 대도무문이야 어디 연호의 발꾸락 때만큼이라도 가당헐쏘냐?'(21세기문학 2002년 봄호, 이병천의 '반달곰뎐' 시작부분)
소설가 문순태는 전남 광양 백운산 아래 한 농사꾼이 전라도 사투리로만 쓴 '오지게 사는 촌놈'(서재환·전라도닷컴)을 읽고 "꿈틀거리면서 뻗어 가는 사투리의 말 줄기가 우줄우줄 춤추는 것이 꼭 판소리 한 대목을 듣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소설이나 산문에서도 판소리를 연상케 하는 작품들이 많다.
민중의 애환을 풍성한 입말로 대변해 온 소설가 이문구는 질박한 토속어를 유려하게 구사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것으로 유명하다. 긴 문장이지만, 판소리 사설이 연상되는 끈끈하고 유장한 문체는 흥겨운 리듬과 절묘한 호흡으로 입에 착착 달라붙어 맛깔스럽다. 완주출신 소설가 유영국도 근대 민중들의 한 많은 삶을 판소리의 사설가락으로 걸쭉하게 우려낸 첫 장편'만월까지'를 통해 문장마다 판소리 가락이 농울 지는 듯, 밀도 높은 언어미학을 보여줬다.
최인석의 '방디기전'(민중)과 김지하의 '문학타령'(창작과비평사), 이병천의 '반달곰뎐'(21세기문학)은 판소리문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구어와 문어가 어우러지며 판소리 가락을 타듯 소리와 의미가 서로를 당기고 풀면서 깊은 사유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특유의 문장은 독자에게 잠시도 긴장의 이완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리꾼 모흥갑 등 조선시대 마이너리티의 역사와 삶을 오롯이 되살린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푸른 역사)과 영화의 구성진 가락이 더해져 우리를 슬프게 했던 이청준의 단편 '선학동 나그네'(열림원)는 소리꾼의 족적을 쫓았다.
문화유산답사를 소재로 한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해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창작과 비평사) '답사여행의 길잡이'(한국문화유산답사회 편·돌베개) '내가 읽은 책과 세상'(김훈·푸른숲) 등에서도 판소리의 흔적이 찾아진다. 특히 곰삭은 문체로 한반도 땅 구석구석에 담긴 소리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연합뉴스 전성옥 기자의 '판소리 기행'(㈔마당)은 너른 들녘에서 나오는 넉넉함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판소리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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