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제대로 확인않고 통장발급
피해속출…금감원 신고땐 구제
얼마전 지갑을 분실한 적이 있던 정모씨(31)는 최근 처음보는 신용카드 이용대금 청구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신용카드를 신청한 사실이 없던 정씨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씨 명의로 발급된 신용카드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거래돼 왔고, 청구서에는 50만원 상당의 금액이 명시돼 있었다. 정씨는 해당 K은행 전주 모지점을 찾아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사실이 없다고 항의했지만, 은행측은 '본인이 아니면 신용카드를 발급해줄 수 없다'는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정씨는 그러나 '최근 통장을 발급한 사실이 있지 않느냐'는 은행 직원의 말에 주민등록증이 든 지갑을 분실한 경험을 떠올리며 '명의 도용'가능성을 제기했고, 결국 은행 직원을 설득해 금전적 피해만은 면할 수 있게 됐다.
은행이 실명 확인을 거치지 않고 신분증만으로 통장을 발급해주면서 이를 둘러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같이 발급된 통장이 버젓이 신용카드 발급에 사용되고, 범죄자들의 송금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
지난달 21일 전주시 서신동 일대 상점에서 절도행각을 벌인 30대 여성 역시 실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은행업무의 허점을 틈타 훔친 신분증으로 여유있게 통장을 발급받았다. 이 여성은 비밀번호가 적힌 통장의 돈을 인출하기 앞서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훔친 주민등록증으로 통장을 만들어 돈을 빼냈다.
타인 명의의 통장이 속수무책으로 발급되면서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각종 사기 범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타인 명의의 '대포통장'이 성행하면서 일선 수사관이 겪는 고충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범행에 사용된 통장 관련 수사에 나섰다가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거나 아예 통장 수사를 기피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전북경찰청의 한 수사관계자는 "은행에서 제대로 실명확인만 하고 통장만 발급해도 범죄발생건수가 상당히 감소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은행의 허술한 통장발급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만, 해당 은행에 대해 실명제 거래위반의 책임을 물어 과태료와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이 고작이다. 더욱이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경우에 한해서다.
금융감독원 전주소비자보호센터 관계자는 "실명확인없이 통장을 발급하는 것은 전부 은행측의 책임이며 실명제 거래위반에 해당된다”며 "금감원에 신고하면 금전적 피해 등 모두 구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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