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잊자.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료들이 성장하는 것 역시 잊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태어나 처음으로 축구공을 만났던 그 때의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휴식기를 맞아 새해 1월4일까지 선수단 전체가 휴가지만 혼자서 완주 봉동의 율소리 전북현대 전용훈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1백80cm, 70kg의 전북현대 2군 선수 유원섭(22).
웅장한 월드컵경기장보다 공설운동장이,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석보다는 듬성 듬성 자리한 관중들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스물두살 축구선수. 잦은 부상으로 최근 2년 연속해 무릎수술을 받아야 했던 그는 생명처럼 여겼던 녹색 그라운드를 떠날 생각도 했었다. 오랜동안의 부진, 그리고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던 유원섭이 다시 축구화를 신고 운동장에 섰다. 그의 가능성을 믿는 구단측의 설득이 그를 일으켜 세운 힘이었다. 그가 99년 졸업 당시 고교 신예 '네 마리의 용(龍)' 중에 하나였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천수(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국가대표), 최태욱(안양LG·국가대표), 최영훈(전북현대·올림픽 대표), 그리고 유원섭.
봉동초등학교와 이리동중, 이리고를 거쳐 전북현대에 입단한 프로 4년차.
이리고등학교 2학년 시절 금석배 우승과 백록기 준우승을 이끌었고, 금석배에서는 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고, 졸업과 함께 고졸신인 유망선수 4명을 선정해 독일 축구유학을 보내는 기회를 잡아 6개월동안 유럽축구를 배우기도 했다. 당시만해도 곧바로 프로무대에서 제몫을 해낼 선수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전북현대에 입단했지만 기대만큼 빛을 보지 못했다. 부상까지 겹치며 그라운드보다는 병실과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깨를 함께 했던 세마리 용들이 기량을 발휘하고 성장해가며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날지 못한 용'이 된 스스로의 모습에 더욱 좌절했다. 방황과 스스로의 자책으로 끝내는 구단측에 선수생활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전북현대 이철근부단장을 비롯해 그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은 유원섭을 일으켜세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의 격려와 용기는 그에게 자신감이 되어 돌아왔다.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올겨울 다시 한번 뜨거운 마음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1군 선수로, 또 기회가 남아있는 올림픽 대표선발도 노려볼 생각이다.”
좌절의 늪을 차고 오르는 유원섭의 희망.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한마리 용이 다시 승천할 마음으로 새해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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