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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흰 닭이 날아가는 곳

 

대낮인데도 하늘이 캄캄하다. 아파트 뒷산 너머에서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비가 그쳤다 다시 내린다. 남우는 물길을 가르며 달려가는 오토바이 배달부를 본다. 헬멧을 비틀어 맨 별난 짜장 아저씨다. 쏘아보는 듯 퀭한 눈빛과 곧추 세운 허리로 네 거리를 지나간다. 오토바이 뒤를 따라 차들이 물살을 가르면서 배달의 기수를 따라 멀어진다. 남우는 건물 로비에 내려놓은 물건들을 점포 안으로 들이면서 거리를 바라본다. 남우의 오토바이가 건물 앞에 비를 맞은 채 서 있다. 황토색 건물이 아파트 숲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띈다. 한의원과 치과, 내과, 소아과 병원과 약국이 몰려 있는 건물이다.

 

오늘 따라 홀 안은 닭을 튀겨가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낮게 틀어놓은 음악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반복해 들려온다. 노래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노래의 반복은 노래의 고문이다.

 

비 오는 날이면 닭을 튀기는 냄새가 유독 건물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을 자극시킨다. 헬스클럽이 있는 건물이다. 남우는 통닭 재료를 주방으로 나른다. 흰 닭 박스에서 피가 흐른다. 이십 킬로가 넘는 통닭 박스 안에는 스무 마리의 닭이 비닐과 얼음으로 포장돼 있다. 남우는 테이블에서 젊은 연인이 남겨놓고 간 닭 뼈를 치운다. 닭다리 뼈와 날개 죽지뼈가 손님이 사라진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 통닭이 튀겨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방을 응시한다.

 

여름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비가 내린다. 실내가 습하다. 차림표 옆 수납장에서 남우는 비옷을 꺼내든다. 두 벌의 비옷이다. 수납장엔 주문표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 옆으로 남우가 써놓은 편지지 묶음이 보인다. 오래 전부터 남우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편지지에 글을 썼다. 딱히 누구에게 보낼 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을 답답하게 옥죄어오는 무언가를 적어 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멍울 같은 것이 자신에게서 툭 터져 나가는 걸 느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닭을 튀기면서 닭의 기름덩이를 떼어낸다. 한 마리 닭은 여덟 조각이다. 닭 한 수는 가슴과 둔부, 날개와 다리로 나뉘어진다. 남우도 어머니 곁에서 가위를 들고 비닐에 들어 있던 닭을 꺼내, 노란 기름 부위를 가위로 베어낸다. 손끝에 와 닿는 미끄러우면서도 부드러운 닭살, 어머니는 그 닭살의 구석구석에 가위 끝으로 칼집을 넣는다. 가위 끝이 닭 부위의 곳곳을 찌를 때마다 불룩불룩 가위 끝이 닭의 표피를 뚫고 바깥으로 송곳처럼 비어져 나온다. 날개와 목 부위의 기름기도 가위로 싹둑 잘라낸다. 남우는 잘라낸 여덟 조각의 닭 부위를 빨간 플라스틱 채반에 부위별로 정리를 한 뒤 냉장고 속에 쌓는다. 어제 넣어놓은 닭 채반 밑으로 붉은 핏물이 고여 있다.

 

남우는 다른 박스를 연다. 어머닌 박스 안의 닭 봉지 숫자를 습관처럼 센다. 가끔 숫자가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 남우는 어머니 곁에 서서 투명한 비닐봉지 안의 닭을 쏟아낸다.

 

퍼렇게 멍이 든 다리를 가진 닭의 다리를 남우가 엄지와 검지 끝으로 만져본다. 닭의 다리는 멍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릎이 골절되어 있다. 힘을 잃은 다리뼈가 멍든 피부 속에서 겉돈다. 닭도 다리가 부러진다.

 

[회사에 전화해라. 요즘 멍든 닭이 너무 많아.]

 

희끗희끗거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본다. 남우는 어머니 사진첩 속에 들어있던 젊을 적 어머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젊어 시집오기 전 사진이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비단 저고리를 입고 찍은 어머니의 자태는 고왔다. 뽀얀 얼굴에 살포시 볼우물을 머금고 있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였지만 어머닌 남우에게 너무 차가웠다. 객지에 나와 철근 일을 하면서도 욕을 입에 담을 줄 모르던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신경이 예민했다. 남우에게 어머니의 지청구는 유리를 긁어대는 날카로운 소리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다리가 부러진 닭은 튀겨도 모양이 안나요.]

 

남우가 어머니를 향해 말한다. 비틀린 채 짧게 튀겨진 닭은 그저 시식용으로 쓰일 뿐이다. 남우는 멍든 닭다리를 보면서 떠올린다.

 

지난 해 치킨점을 하기 위해서 본사가 있는 공장에 견학을 갔었던 때였다. 양계장에서 실려온 닭은 줄줄이 벼랑처럼 가파른 곳으로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올라갔다. 육계용으로 쓰이는 이탈리아 원산의 레그혼은 컨베이어 벨트의 마루를 넘지 않으려고 날개를 펴고 바동거렸다. 철망에 부딪친 닭에서 닭털이 날아왔다. 닭은 철망에 발이 끼인 채 심하게 요동을 치면서 컨베이어벨트 사선을 넘어갔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사선을 넘어간 닭이 나중에 털이 뽑힌 채 되돌아왔다. 남우는 외줄에 묶여 허공에 떠 있던 닭을 보았다. 그 닭을 향해 수많은 주사바늘이 달려들었다.

 

[염지작업이죠. 이전에는 닭을 소금 찍어 먹었지만 요즘은 닭에 양념과 소금기가 주사되어서 소금 없이 먹어도 간간하고 맛있는 통닭이 되는 겁니다.]

 

흰 가운을 입은 공장직원이 설명했다. 온몸에 주사를 맞은 흰 닭은 이번에는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여덟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퇴화된 날개를 퍼덕이던 닭은 털이 뽑히고 주사를 맞은 채 조각조각 몸이 나뉘어졌다. 다음 공정에서 아주머니들은 그 닭 조각들을 투명한 비닐봉지 속에 넣어 포장했다.

 

남우는 어릴 적 닭을 잡던 기억이 났다. 처음으로 닭을 잡았을 때였다. 외가 마당에서 닭을 잡았는데 아버지와 외숙이 삼거리 주막집에서 술을 드시는 바람에 남우가 대신 닭을 잡아야 했다. 남우는 처음 일이라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악스럽게 마음을 다잡아 닭 목을 비틀었다. 한 바퀴 두 바퀴. 그렇게 아홉 바퀴 닭 목을 돌린 채 닭털을 뜯어냈다. 닭털을 막 뜯어내려고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갑자기 목이 휘휘 풀어지더니 남우를 향해 털 빠진 닭이 달려드는 거였다. 남우는 기겁을 하고 닭에 쫓겨 달아났다. 어느 새 닭은 뒤란 감나무 위로 올라가 있었다.

 

[사내새끼가 그리 겁이 많아서 어디 쓰나.]

 

남우는 그 말에 다시 바지랑대를 들고 닭을 쫓아갔지만 털 빠진 닭은 남우를 피해 이리저리 날아 다녔다. 붉은 색과 초록색 비단 옷을 입고 꽁지깃을 세운 조선 닭이었다.

 

외숙은 말고기 자반 같은 얼굴로 돌아와 거친 손으로 주저 없이 닭 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이내 털을 뽑고 배를 갈랐다. 뜨거운 닭의 내장이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냇가 너른 돌 위에 쏟아져 내렸다. 흐르는 물에 닭 모래집을 소금에 버무려 씻어냈다.

 

삐이... 알람 시간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린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통닭을 건져 올린 남우는 프라이어기 끝에 건다. 망에서 흘러내리는 기름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 튀겨진 통닭을 향해 손님이 다가선다. 닭의 눈처럼 빛나는 눈빛이 또렷이 통닭을 향해 있다. 새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통닭은 노란 옷을 입고 포장지 안으로 들어간다.

 

전화벨이 울린다. 비리리리. 그 동안의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남우의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재료가 오는 시각은 일이 시작되는 시각이어서 더더욱 일이 몰린다. 남우는 깡통따개로 소스통을 따고, 파우더며 재료를 창고에 넣어둔 다. 튀겨진 통닭을 오토바이 배달통에 넣은 남우가 아파트 골목를 향해 달려간다.

 

오늘 따라 아르바이트생 출근 시간이 늦다. 남우는 시간에 쫓겨 몹시 초조하다.

 

[오늘 외할아버지 제사라서요.]

 

아르바이트생이다. 아무 말이 없던 아르바이트생의 일방적 통보 앞에 남우는 막막해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주문이 폭주하는 걸 알고 아르바이트생은 번번이 비가 내리는 날마다 핑계를 대고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배달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남우는 바싹 침이 마른다. 다시 또 전화벨이 울린 다.

 

[예. 나라 통닭입니다. 네, 네. 1204호요. 알겠습니다. 네, 네.]

 

남우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에 난 검은 점이 자꾸만 실룩이며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다. 통 유리 출입문 밖으로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통 유리 밖에서 물방울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거리엔 우산을 쓴 사람들의 걸음들이 뒤엉킨다. 자동차 와이퍼 움직임이 빨라진다.

 

남우는 오토바이 안장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안장 위에 다시 신문지를 얹어놓는다. 빗물이 신문지에 빨려 들어온다. 신문지를 걷어내고 다른 신문지를 덮는다. 남우는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조금 비가 그치긴 했지만 구름의 이동이 빨라지고 있다. 바람이 조금씩 더 거세게 불어온다. 경비실 텔레비전에서는 남해안으로부터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 남우는 오토바이를 몰고 자동차 앞쪽으로 달려간다.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던 네거리 주변으로 보이는 곳은 온통 아파트뿐이다. 거대한 직육면체에 수많은 창들을 달고 있는 아파트가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치솟아 있다. 거대한 닭장 같은 집들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도시, 사람 위에도 사람 있고 사람 아래도 사람이 사는 동네 모습이 갑자기 낯설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오토바이의 대열이 나란히 서 있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인 만두집 배달부가 불꽃처럼 일어선 머리칼을 날리며 오토바이의 대열 가장 앞쪽으로 나선다. 모두 배달의 기수다. 도로 곳곳으로 비바람이 몰려오고 있다. 거리를 휩쓴 잿빛 물줄기가 배수로를 찾아 급하게 흘러간다.

 

남우가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이전에 남우는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통닭 일을 선택한 후 오토바이를 배워야 했다. 남우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눈길을 뒹굴며 오토바이 타는 걸 배웠다. 시간과의 전쟁이자 목숨을 건 곡예였다.

 

오늘 새벽, 신문 배달을 하던 옆집 영감님이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에 치어 죽었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과부틀이라고 불렀다. 곳곳에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오토바이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생활이었다.

 

갈대가 우거진 부엉산 고갯마루를 넘어갈 때였다. 과속방지턱에 걸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뛰어오른 오토바이를 세우고 배달통을 열어보았다. 배달통 안에 깨진 유리조각과 통닭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갈대가 우거진 들판에 서서 깨진 콜라병 조각을 골라냈다. 핸드폰이 울렸다. 지금 바쁜 데 왜 오지 않느냐는 전화였다. 남우는 콜라에 젖은 통닭을 입에 물고 흔들리는 갈대밭에 앉아 버리기 아까운 통닭을 입으로 몰아넣었다.

 

더 이상 갈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들판에서 남우는 소리를 질렀다. 우우. 남우는 자신이 지르는 소리가 마치 수탉의 울음소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넘어올 때 오토바이 앞 바구니에 달빛이 내렸다. 부엉산 고갯마루를 오를 때면 오토바이보다 먼저 달빛에 비친 철망 바구니가 언덕을 넘어갔다.

 

거대한 아파트 숲 사이로 남우가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간다. 그 빽빽한 아파트라고 해도 이름이 있고 호수를 찾아가는 지름길이 있다. 남우는 그동안 도시의 골목이란 골목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36호차. 호출. 끝없이 신호음이 전해져 오는 운전자 호출택시 사무실, 담배를 피워 물고 고스톱을 치고 있는 가요주점 아가씨 대기실, 수건을 걸치고 나오다 수건이 벗어지는 바람에 화들짝 다시 들어가던 사람의 여관방에까지 배달했다. 남우는 통닭뿐 아니라 심부름까지 해야 했다. 담배, 술, 화투짝부터 시작을 해서 생리대, 해열제 그리고 피임약까지. 남우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뜨거운 통닭을 들고 문을 두들겼다.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시간이 흐른다. 배달 시간이 이십 분이 넘으면서부터 사람들은 재촉을 하기 시작한다. 삼십 분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다. 삼십 분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힘겨워한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거라고. 그들은 닭의 눈처럼 빨간 눈을 뜨고 왜 늦었냐고 따진다. 남우는 고개를 숙이고 말한다.

 

[우리는 닭을 미리 튀기지 않아요.]

 

[아니 그럼 닭을 잡아서 튀겨오기라도 했단 말이요. 아이들이 다 잔단 말이야.]

 

배달시간이 더 늦어지면 사람들은 막말을 한다.

 

[우린 시킨 적 없어요. 다른 데 알아봐요.]

 

남우는 철문을 열고 서 있는 사람을 향해 굽실거린다. 더 이상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붉은 눈동자와 날카로운 부리, 그리고 머리에 난 빨간 벼슬이 보일 뿐이다. 주문이 밀리기 시작하면 전쟁이 시작된다.

 

어린 손님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아이들은 기다릴 줄을 모른다. 시간도둑을 향해 어린 왕자의 저주가 쏟아진다.

 

[망해 버려라!]

 

초등학교 사 학년이나 될 법한 아이의 입에서 날카롭게 내뱉어진 말이 자꾸만 머리 속에 맴돈다. 망해 버려라. 망해 버려라. 그래. 망해 버려야지. 네 말대로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구나. 왕자님 미안합니다. 망해 버리지 못해서. 남우는 송곳니가 방석니가 되도록 이를 갈면서 분하게 여겼을 아이를 떠올린다. 어린것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막말을 할까. 남우는 어린 왕자의 저주를 뒤통수에 달고 아파트를 빠져나온다.

 

배달부에게는 따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요령이 있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면 남우는 두 층계를 눌러놓는다. 아래층에 있을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배달시간이 길어진다. 두 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려오는 동안 남우는 통닭을 건네고 돈을 받아야 한다. 잔돈까지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경계의 눈초리와 함께 삐죽 내미는 사람들의 얼굴, 직육면체 바깥으로 돈을 내민 사람들은 현관문을 급하게 걸어 잠근다.

 

홀 안에는 오늘 따라 대기하는 손님이 많다. 아르바이트생이 나오지 않아 여동생까지 나와서 일을 거들지만 밀려오는 주문을 소화해내기는 역부족이다. 어머니는 가까운 곳 아파트를 향해 뛰어다니듯 배달을 다닌다. 천둥이 치기 시작하는 바깥엔 이미 어둠이 내렸다. 전화벨 소리가 끊임없이 보채는 아이처럼 울어댄다. 독촉 전화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통닭을 찾는 아우성 소리가 자꾸만 더 커진다.

 

[너무 많이 밀려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코드를 뽑아야겠어.]

 

남우는 코드를 뽑아낸다. 전화벨 소리가 사라진 후 조금 마음이 놓인다. 밀려 있는 주문과 홀 안에 대기하는 손님들을 생각하니 일이 까마득하다.

 

[무슨 통닭을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오늘 따라 웬 난리야.]

 

텔레비전에서는 남해안을 휩쓸고 올라오는 태풍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피해규모가 사상최대로 늘어나고 있다는 방송이 들려온다. 화면 안으로 강풍과 맞서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 보인다. 바닷가에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몰려온다. 곳곳에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화면 속 부둣가의 배들은 심하게요동을 치고 양돈장과 양계장의 가축들이 출렁이는 강물과 함께 떠내려간다. 심하게 불어난 물 속에서 바동거리는 닭의 모습이 보인다. 스티로폼과 뿌리뽑힌 나무도 닭과 함께 흙탕물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먼 곳은 배달을 할 수가 없어. 앞으로 먼 곳은 받지 마.]

 

남우는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나온 임산부 여동생을 향해 말한다. 홀 안에 들어서자 비옷에서 쌔한 땀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나라통닭이란 곳을 인수하게 된 건 순전히 주위의 권고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혼자가 된 아들을 향해 고생이 되더라도 힘든 일이 돈이 된다며 치킨점을 권했다. 아내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난 후였다. 남우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니는 일은 마음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만큼 다행한 일이었다. 힘들게 일을 하고 들어서자마자 남우는 그대로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생각으로 불면에 시달리던 날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늙으신 아버지는 집에서 아이를 봤다. 가끔 치킨점으로 네 살배기 현몽이를 데리고 왔다.

 

가까운 아파트 두 곳을 배달하고 나와 먼 곳을 향하는 도로를 탄다. 차들은 이미 모조리 집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거리는 휑하게 비어 있고 길 위로 비바람이 몰려간다. 강풍에 가로수가 활처럼 휘어진다.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헬멧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가 커진다. 빗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얼굴을 가리던 유리 덮개를 연다. 세상 가득 빗물이 쏟아져 내린다. 얼굴에 와 닿는 빗방울이 송곳처럼 얼굴에 와 박힌다. 초록이 짙은 숲길엔 나무들이 바람에 진저리를 친다. 너도밤나무, 참나무와 온갖 활엽수들이 비바람에 무당처럼 일어나 춤을 춘다.

 

대지를 쓸어 가는 비바람이 길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남우의 오토바이는 한 치도 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급기야 바람에 뒤로 밀려난다. 비바람에 버드나무 가로수가 뽑힐 듯 흔들린다. 남우는 오토바이를 도로 갓길로 옮기려 하지만 오토바이를 움직일 수가 없다. 오토바이 옆으로 급하게 지나가는 차들이 남우에게 물벼락을 날린다. 남우는 겨우 가로수가 있던 산기슭 쪽으로 오토바이를 멈추어 둔 채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찢기어 나간다. 비바람 속에서 공원을 올려다본다. 공원은 원래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다. 남우는 공교롭게도 할머니의 묘가 있던 공동묘지 자리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서 있다. 남우는 또렷이 할머니를 이장하던 이태 전 겨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날 남우는 아침 일찍 곡괭이와 보리박스 두 개, 그리고 화선지와 알코올을 준비해 승합차로 아버지와 당숙 어른을 모시고 공동묘지로 왔다. 미명이 밝아오기 전의 새벽이었다. 다행이 땅은 심하게 얼지 않아 곡괭이로 몇 번 파 들어가자 삽 끝이 잘 물려 들어갔다. 십 팔 년만의 일이었다. 도시에서 가까운 공동묘지를 공원으로 바꾼다고 해서 이장을 하라는 통지와 함께 나무말뚝에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365번, 이미 파간 묘지에는 네모난 널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어 있는 무덤 사이로 길이 보였다. 새벽 화장터가 있던 곳을 돌아 언덕을 올라갔다. 남우는 번번이 힘겨울 때면 찾아오곤 하던 할머니의 묘였다. 남우는 작은 아그배나무가 자라던 비탈을 확인했다. 남우는 묘를 파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공원묘지를 파갔다는 사진을 제출해야만 시에서 보상을 해 주기 때문이었다.

 

살짝 언 땅 아래로 황토를 파내려 갈 때 남우는 어릴 적 닭을 잡았던 때의 기억이 났다. 생명, 쉽게 죽지 않던 생명이 땅 밑에서 오랜 세월 너머로 다시 빛을 보고 있었다. 죽은 이의 유골을 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 몹시 떨렸다. 당숙 어른은 흙을 파내려 가면서 서서히 유골이 가까워오자 주위의 흙을 보면서 주의를 기울이며 땅을 파내려 갔다. 주위의 흙과는 다른 지층이 나오면서 머리카락이 보였고, 유골이 하나 둘씩 땅 밑으로 드러났다. 척추, 넓적다리 뼈, 어깨뼈, 그리고 두개골과 하악골이 보였다. 잔뼈는 흙으로 삭아지고 없었지만 큰 뼈들은 잘 남아 있었다.

 

[네 할머니다.]

 

당숙은 하나하나 뼈의 이름을 불러 주면서 뼈를 남우에게 건네주었다. 남우는 할머니의 유골을 받아 화선지에 이름을 적어 보리박스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유난히 남우를 사랑해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 유골과 함께 떠올랐다.

 

[네가 어렸을 때 일거야. 네 할머니 불알을 떼 간다고 마을 할머니들이 놀려대던 적이 있었지. 넌 할머니 불알을 떼 가면 다 죽여 버린다면서 동네 할머니들을 향해 니갈내갈 욕을 하면서 달려들었지. 그 바람에 할머니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던 일 기억나?]

 

당숙어른은 가끔 남우에게 집안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우의 할아버지는 세 번 장가를 갔는데, 장가를 갈 때마다 아내가 죽어 네 번째 아내를 맞이해야 했다. 그 분이 지금 남우의 할머니 용담댁이었다. 무려 스물 세 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새댁은 이전 할머니가 쓰던 택호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남우 아버지가 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그 후 할머니는 자식 둘을 배다른 큰딸에게 떼어놓은 채 다른 곳으로 개가를 했고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시집간 누나의 집에 얹혀 살아야 했다.

 

남우는 할머니의 두개골을 받아든다. 하악골을 들고 있던 남우는 옛날 할머니의 모습을 그 하악골 속에서 확인한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가 없이 살다 가셨다. 치아가 없는 걸 보니 정확히 할머니였다. 사과를 숟가락으로 긁어 드시던 할머니, 우물우물 잇몸으로 사과를 긁어 삼키시던 할머니의 입매가 남우에게 선하게 다가왔다. 남우는 파묘를 한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날 남우와 일행은 승합차에 유골을 싣고 고향으로 향했다. 음식과 함께 어머니는 흰 닭을 보자기에 싸서 차에 실었다. 차에는 단골과 그 일행으로 보이는 노년의 단골이 차에 올랐다. 어려서 떠나온 고향이었다. 섬진강 최 상류 마을이었다. 차안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길 내내 닭소리가 들렸다. 흰 닭의 울음소리였다.

 

섬진강 발원지인 팔공산 신암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남서쪽으로 흐르다 북으로 역류해 갔다. 충적 평야지대 위로 덕태산과 선각산 그리고 팔공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이산 두 귀가 물길 너머로 보이는 분지였다. 놀란 듯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의 두 귀가 바라다 보이는 마을이었다. 물줄기를 따라 한 쪽은 어머니의 고향이었고 다른 한쪽은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동창과 남계리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언덕에 오르자 구름뜸과 서당뜸 그리고 윗몰이 환하게 한 눈에 들어왔다. 이전 남우의 선조가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왔던 집성촌이었다. 그 형제간이 서로 다른 마을에 터를 잡고 마을을 이뤄왔다. 덕현과 봉수천을 향해 역류하는 물줄기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할머니가 묻혔다. 선산은 아니었지만 선산이 가까운 곳이었다.

 

포크레인으로 정지작업을 하고 할머니의 유골을 묻었다. 화선지 하나하나에 쌌던 유골들을 순서대로 다시 짜 맞추었다. 남우는 할머니의 사라진 살처럼 사라진 세월을 보고 있었다. 유골을 보면서 남우는 자꾸만 사람들이 먹고 간 닭 뼈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세월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닭의 살처럼 세월은 사람의 살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뼈는 세월의 기념비였다. 사람들은 다시 흙을 붓고 봉분을 만들었다.

 

완전히 떼를 입혀 묘를 만드는데 꼬박 한 나절이 걸렸다. 이른 새벽 출발한 길이었다.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이 한쪽 모퉁이에 화톳불을 피웠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콩 대 옆으로 준비한 음식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냈다. 하늘은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린 날씨였다.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눈발이 비쳤다. 집안 어른과 남자들이 유교식으로 제를 올렸다. 제수 위로 눈이 쏟아졌다.

 

[너도 인사 올리거라.]

 

남우는 할머니의 이장한 봉분을 향해 절을 했다. 떼를 심어놓은 황토 위에 엎드려 절을 하는데 황토 위로 굵직한 눈발이 떨어졌다. 의식이 이어질수록 눈발이 더 굵어졌다. 흩날리는 눈 속으로 푸른 산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흰 닭은 계속 봉분 주위를 부리로 콕콕 찍으면서 돌아다녔다.

 

눈이 쌓이는 묘지 위로 닭의 발자국이 나 있었다. 남우는 흰 닭에게 다가가 닭의 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른 발가락 위로 나 있는 며느리발톱이 보였다. 갈라진 발가락에서 유난히 멀리 떨어진 채 비어져 나와 있는 며느리발톱이었다.

 

할머니는 살아서 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다. 남우는 어릴 적 집 뒤란으로 할머니가 작대기를 들고 어머니를 쫓아가던 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어머니가 할머니에겐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개가한 집에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다시 염치없게도 자식을 찾아 돌아왔다고 했다. 살아서 할머니는 죽은 자식을 안고 뒷산으로 묻으러 떠나던 일을 떠올리면서 눈물바람을 하곤 했었다. 반면 남우의 외할머니 또한 어린 딸을 시집 보내놓고 무던히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어린것을 시집 보내놓고 가슴앓이를 했던 외할머니였다. 그 바람에 자주 외숙이 담장 밖을 기웃거리다 갔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집에서 만난 손자를 남우 할머니는 끔찍이 감싸고돌았다.시어머니 치마폭에 휩싸인 자식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길을 남우는 또렷이 기억했다. 남우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낳은 자식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 것을 보았다. 집을 나가버리려고 해도 걸리는 게 자식인 것처럼 어머니는 버릇없던 남우를 서늘한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유교식의 제사가 끝난 후, 단골이 흰 닭을 봉분 주위에 묶어 놓은 채 이장 굿을 시작했다. 다른 일행 할머니는 산신을 향해 음식을 나누어 한쪽 끝에서는 산신이 도와주기를 빌었다. 봉분 앞에서는 단골 할머니가 무복을 입고 꽹과리와 징을 쳤다. 흰 눈송이가 하늘에서 구름재를 향해 펄펄 흩날렸다.

 

그 때 남우는 들었다. 어머니 울음소리였다. 어머닌 울면서 새로 만든 할머니의 봉분 위로 올라갔다. 어머니는 대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다. 신장대였다. 푸른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채를 들고 어머니는 봉분 위에서 하늘로 뛰어올랐다. 눈이 펄펄 쏟아져 내리는 봉분 위에서 뛰고 있는 어머니를 남우는 바라보았다. 점차 어머니가 더 높이 뛰기 시작했다. 신장대를 하늘 높이 흔들었다. 아버지와 당숙 그리고 단골과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닌 울면서, 눈발 속으로, 넋이 빠진 사람처럼 뛰어올랐다. 흰 닭은 작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끈에 묶인 채 무덤 주위를 돌았다.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화병에 시달렸다. 또렷한 병명도 없이 아팠다. 병원에 가면 신경성이라고 말을 할 뿐 또렷한 병인이 없었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어머니의 울화병를 치유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은 남우 어머니에게 굿을 권했다. 치방굿이었다. 그 날 남우는 조붓한 방안 문 위의 부적을 기억했다. 붉은 색 닭 부적이었다. 닭이 붉은 색 옷을 입고 두 다리로 일어나 춤을 추며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 동네 사람들이 방안을 들여다봤다. 방안에 징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덩더쿵 울렸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의 애옥살림이었다. 남우는 그 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 날 이후 남우는 가끔 목이 졸리는 꿈을 꾸곤 했다.

 

[이 육시헐... 년이...]

 

남우는 보았다. 할머니의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눈에선 불꽃이 일었다. 그건 불꽃심처럼 차갑고 어두웠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와 할머니는 모두 닭띠였다. 남우 어머니는 신장대를 들고 밥상의 쌀 위에 손을 얹고 있던 어머니에게 갑자기 신기가 내려앉았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방안에서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방방 뛰어오르다 급기야는 그 신장대로 시어머니인 용담댁 얼굴을 후려치고 만 것이었다. 할머니가 도시로 이사를 온 후의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 있은 후 남우 할머니는 인근의 고모집으로 가 살았는데 죽기 며칠 전 집으로 돌아왔다. 남우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돌아오시던 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주먹만한 돌덩이가 가슴으로 치밀어 올라온다고 말하던 날 할머니는 가슴애피로 돌아가셨다.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날이었다.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남우는 할머니의 무덤에 갔다. 도시의 공동묘지였다. 무덤에 가면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가 시집오기 전에 동네 김해댁에게 배웠다는 닭 타령이었다.

 

초록비단 접저고리, 자지옥자 짓을 달아

 

수 만년 대문밖에 수없이 흩은 곡석

 

낱낱이나 주어먹고 그럭저럭 컸건마는

 

손님 오면 대접하고 병이 나면 소복하고...

 

[할매가 너를 위해 많이 빌어주마.]

 

할머니가 적어놓은 처수심경의 화선지 뭉치 속 글씨는 빼틀빼틀 고르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종이가 닳아질 정도로 불경을 외웠다. 한 자 한 자 적어간 그 정성스러움처럼 할머니는 밤새 중얼거리면서 경을 읽곤 했다. 남우는 할머니를 따라 초파일 전야에 암자에 들르기도 했고 할머니 손을 잡고 장에 가면서 천자문을 외우기도 했다. 어린 남우에게 할머니는 세상을 배우는 통로였다. 유난히 무명 흰옷을 즐겨 입던 할머니였다. 합죽이 할머니라고 놀림을 받던 할머니의 내려앉은 치아와 하악골을 남우는 잊지 못했다.

 

뗄 레야 뗄 수 없는 고부간의 갈등은 화해를 이루지 못한 채 끝이 났다. 하지만 남우 할머니가 죽고 난 후에도 남우 어머니의 화병은 그치지 않았다. 남우는 그런 어머니의 신경병을 지켜봐야 했다. 할머니의 묘를 이장하던 날, 굿을 한 것도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는 어머니의 병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울화병은 어쩌면 할머니의 원혼이 어머니를 괴롭혀 그렇게 된 것이라고 어머니는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눈발이 굵어졌다. 어머니는 신장대를 들고 아버지, 당숙어른 그리고 동네 사람들 사이로 뛰어다닌 후 이번엔 남우에게 다가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우리 불쌍한 남우야... 나다. 나. 네 할매... 월매나 월매나 사느라 힘이 드냐. 앞으론 잘 될 거다. 잘 될 거야.]

 

꽹과리 소리와 함께 흰 눈이 펄펄 팔공산, 덕태산, 선각산이 바라다 보이는 분지 위로 내렸다. 어머니는 기운이 다 소진되도록 뛰고 또 뛰었다. 남우는 그 순간 보았다. 어머니 안에 살아 있던 할머니를...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혼을 불러 비로소 오랜 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한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날 단골은 할머니의 원혼이 풀리길 수없이 소원한 후 남우 할머니의 무덤가에 묶어놓았던 하얀 닭을 풀어 하늘로 날려보냈다. 하늘 가득 눈송이 떨어져 내리는 하늘과 새하얀 대지를 향해 흰 닭이 날아올랐다. 닭은 퇴화된 날개를 푸덕이면서 산언덕 아래로 날아갔다. 순간 닭이 날아가면서 내는 울음소리가 어머니 울음소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 닭이 사라진 대지 위로도 흰 눈이 끝없이 쌓이고 있었다.

 

배달을 하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할머니의 묘가 있던 공원을 올려다본다. 아그배나무도, 억새풀 흔들리던 비탈도 사라진 언덕에는 모정 하나가 태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힘겨울 때마다 마음의 숨길을 터 주던 길이다. 할머니의 묘 오르던 길, 남우는 그곳에 자리한 공원을 바라보기만 해도 할머니의 품처럼 너른 따스한 온기를 그 뒷산에서 느낄 수 있다. 할머니는 가고 없고 뼈만 남아 이장을 한 일을 떠올리면서 남우는 오토바이를 타고 태풍 속을 뚫고 지나간다. 자꾸만 빗방울과 함께 흐르는 물이 뜨거워진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안경 속에서 자꾸만 따뜻한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도시는 태풍의 바람으로 정전이 돼 칠흑처럼 캄캄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네거리를 사이로 사 분의 삼이 불이 꺼져 있는데 유독 남우의 건물이 있는 동네에만 불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여동생은 비닐 포장에 배달 갈 아파트 호수를 적어놓은 봉지를 가져와 남우에게 건네준다. 남우는 건물 앞에서 통닭 봉지를 받아들고 다시 아파트 숲으로 달려간다.

 

불 꺼진 아파트 계단을 통해 남우가 올라간다. 전기가 나간 후에도 벨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닭을 먹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걸까. 어둠과 함께 천둥과 벼락이 떨어지는 도시 속에서 두려움을 달래줄 무언가를 사람들은 찾고 있다. 호랑이가 포효를 하면서 하늘을 걸어가는지 흰 빛줄기가 쩍쩍 어둠을 갈라놓는다. 잠시 후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온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남우의 다리가 휘청거린다. 발에서 비직비직 물이 흘러나온다. 몸에서 열이 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불 꺼진 캄캄한 아파트 사이로 오토바이 소리가 울려온다. 조금 지나자 경찰이 남우의 오토바이를 제지시킨다. 곳곳에 가로수가 뽑혀 있고 간판이 떨어질 듯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물이 들어온 가게에서는 밤늦도록 물을 퍼내는 바가지 소리가 들려온다. 이 폭우와 태풍 속에서 지하 단칸방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은 지금 물 속에 잠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통닭을 찾는 사람들의 전화벨 소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월드컵 때보다 더 하다. 남우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어두워지는 칠흑 같은 밤이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더 악을 쓰면서 통닭에 집착을 하는 거라고.

 

남우는 아내를 떠올린다. 삼 년 전 아이를 낳다 아내가 죽었다. 그때까지도 남우는 몰랐다. 아내의 몸 속에 그처럼 큰 혹이 자라고 있었던지. 난산이었다. 아내의 불룩한 배, 아이가 나오지 않은 채 비지땀을 흘리면서 절규하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아내는 남우를 보면서 여보, 살려줘, 날 살려줘, 애원했다.

 

남우는 아파트 부근 공터를 돌아오다 물구덩이 속에 있는 돌을 보지 못해 허공으로 붕 떠오른다. 남우는 중심을 잃고 공터로 떨어진다. 순간 오토바이는 물 속에 처박히고 남우는 땅바닥으로 나뒹군다. 떨어질 때 무언가에 눌렸는지 숨을 쉴 수가 없다. 손바닥에선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흐른다. 바지 사이로 무릎이 드러나 있다. 남우는 일어날 수 없어 풀밭을 기어간다. 오토바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신만 멀쩡하다. 오토바이는 시동이 꺼지지 않은 채 쓰러져 엔진소리를 낸다.

 

순간 비바람과 함께 번개가 떨어진다. 남우는 번쩍이는 빛 속에서 죽은 아내를 떠올린다. 왠지 알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속에서 솟구쳐 오른다.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그리워하는 나무꾼처럼 남우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남우는 자신이 외치는 소리가 아파트의 벽을 맞고 메아리쳐 울려오는 걸 듣는다. 그 소리는 나무꾼 수탉의 울음소리 같다. 날개옷을 찾아 입은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수탉이 되어버린 나무꾼처럼 자신도 하늘을 향해 울고 있다.

 

그 날 눈이 내리던 고향의 언덕에서 듣던 어머니의 울음소리처럼 남우 자신도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남우는 이태 전 겨울의 굿을 생각한다. 그 날 굿에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부르던 닭타령처럼 비단 저고리 입던 닭들은 하나같이 다 자신의 몸을 바쳐, 죽어가고 있다. 남우는 흰 무명옷을 즐겨 입던 할머니가 남긴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닭은 사람이 죽을 한 목숨 대신해 죽는 거란다.]

 

오토바이를 일으키려다 남우는 풀밭을 본다. 닭의장풀꽃이다. 짙은 하늘색 꽃잎 사이로 노란 수술을 드러내놓고 있는 달개비라 불리는 닭의장풀꽃이다. 남우는 할머니가 키우던 닭장 앞에 피어나던 달개비꽃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들이 오면 잡아 주려고 했던 닭, 그 마당에 피어나던 달개비꽃이다. 남우는 도시의 아파트들 바깥에 피어 있는 닭의장풀꽃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숨쉴 곳 없고 마당도 공원도 사라진 도시 아파트의 숲 속에 피어난꽃이다. 개여뀌, 쇠비름, 명아주, 그리고 닭의장풀이라 불리는 달개비까지 도시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들을 그리워하며 피어난다. 남우는 도시의 공터나 인가에서 자라나는 가장 흔한 풀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살아온 자신을 돌아본다. 고향에 지천으로 피던 슬픈 도라지꽃 빛깔을 가진 달개비꽃을 보면서남우는 닭장 앞에 피어난다는 닭의장풀꽃을 생각한다. 그런 닭의장풀꽃이 피어나는 도심의 공터를 본다. 남우는 거대한 닭장으로 변해 가는 도시의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사람들은 꼭꼭 문을 걸어 잠그고 흰 닭처럼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다. 그들 앞으로 진한 하늘색 꽃잎이 비바람에 흔들린다. 꽃 잎 안엔 너무도 선명하게 두 팔을 뻗고 있는 노란 수술 두 개가 보인다. 도시 속 달개비꽃은 처연함 속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다.

 

털이 뽑힌 채 온 몸이 조각조각 찢겨져 나가던 닭의 모습을 남우는 눈에 선하게 떠올린다. 갑자기 아파트 숲 곳곳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찢겨진 바지차림으로 일어나 아파트 앞 공터에 피어난 닭의장풀꽃 한 송이를 꺾어 입에 물고 남우는오토바이를 서서히 일으켜 세운다. 오토바이는 브레이크가 심하게 일그러지고 탄력을 잃었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오토바이를 타고 남우는 정전이 된 아파트 모퉁이를 힘껏 달려간다. 비가 억수같이 남우를 향해 달려든다. 어두운 아파트 안에서자꾸만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남우는 태풍을 뚫고 나라통닭을 향해 달려간다. 눈송이가 펄펄 쏟아지던 날, 고향 하늘로 날아오르던 흰 닭처럼 남우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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