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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오카리나

 

오카리나는 이태리어로 '작은 오리'라는 뜻이다. 악기의 모양이 오리와 닮아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듯하다. 지금은 흙으로 빚어 만든 폐관 악기를 통칭해서 오카리나라고 한다. 오카리나의 투명하고 그윽한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끝없는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페루에서는 거리 악사의 애조를 띤 음성이 되고, 히말라야 고원에서는 목동의 피리가 되며, 바이칼 호수에서는 아침 햇살을 즐기는 새가 된다.

 

내가 오카리나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노무라 소지로가 연주한 "대 황하"를 듣고 나서다. 1986년, 일본 NHK-TV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대 황하'의 배경음악이 오카리나로 연주되면서 이 악기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오카리나 애호가들은 작곡자이자 연주자이며 匠人인 소지로가 만든 악기로 연주하고 싶어한다. 소지로는 "예술가는 고독하지 않으면 예술 혼이 훼손된다"는 신념에 따라 문명의 편리함을 뿌리치고 지금도 산속의 폐교에서 가족과 애견만 데리고 자기의 예술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오카리나의 소박하고 깊은 울림의 소리는 흙의 풍요로움과 아늑함 때문일 것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흙에서 태어나 흙의 보살핌을 받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흙에는 모든 생명체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러기에 흙은 생명체의 영원한 품속과 같다. 흙속에는 수분이 배어들어 호흡할 수 있는 미세한 공간이 있다. 그래서 오카리나는 연주자의 숨을 통해 내뱉는 침을 흡수하여 소리가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저열에서 가공되는 것이다.

 

오카리나는 연주자가 보낸 마음에 따라 다른 울림을 보낸다. 부드럽게 속삭이면 나비가 날고, 애틋한 사연을 보내면 풀벌레 음성으로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고함을 치거나 윽박지르면 겨울바람 소리만 들려준다. 입으로만 내는 기교의 소리는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을 하여도 허공을 맴도는 공허한 소음에 지나지 않지만 가슴 밑바닥의 꾸밈없는 소리에는 만물이 미소지으며 화답한다.

 

오카리나의 제일 높은 음은 제 음정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다른 관악기와 마찬가지로 오카리나도 고음으로 갈수록 세게 불어야 하지만 가장 높은 음은 오히려 바로 밑의 음보다 조금 약하게 불어야 제 음정을 낼 수 있다. 작게 불면 소리가 나지 않고 기분에 들떠 너무 세게 불면 음이 뒤집혀 바람 소리만 난다. 이는 마치 질 높은 삶이라 해서 반드시 풍요한 물질이나 높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는 것과 같다.

 

소리는 부딪히는 물체에 따라 다르다. 딱딱한 물체의 둔탁한 소리는 감정이 없고 날카로운 물체의 자지러지는 소리는 짜증스럽고 불안하다. 양적 팽창을 추구하는 사회는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지만 가슴끼리 부딪히는 소리야말로 벅찬 감동을 주는 아름답고 귀한 소리이다.

 

폐관 악기인 오카리나는 밀폐된 공간에서 수없이 부딪히고 돌아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 몇 번이나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소리는 잘 빚은 술처럼 깊은 향기가 배어 있으며 주변과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이 된다.

 

굳이 오카리나의 결점을 말한다면 다른 악기에 비해 음역이 좁다는 것이다. 오카리나를 처음 배우려고 했을 때 몇 번이나 망설였다. 피아노는 52음이고, 하모니카는 24음이나 되는데 고작 13음 밖에 되지 않는 오카리나로는 연주에 한정이 따르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보다는 그렇게 주어진 환경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음역이 좁아 오히려 빨리 숙달될 수 있는 장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부족한 듯한 이런 점들이 동양 예술의 토양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동양의 회화들은 서구의 회화처럼 그 선이나 색깔들이 복잡스럽지 않다. 절제되고 축소된 선에서 오히려 그려 넣기 어려운, 그릴 수 없는 많은 색과 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나를 감동시킨 맑은 음색까지도 좁은 음역이라는 선입견으로 무시하고 비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절제되고 압축된 음역이야말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소리로 주어진 삶을 다듬고 가꾸는데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카리나와 빨리 친해지고 싶어 아침저녁으로 내 마음을 실어 보았지만 재주가 없고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가족들의 잠만 설치게 하였을 뿐 오카리나는 좀처럼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기 목소리도 제대로 구분 못하면서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쇳소리를 얼마나 씩씩하게 말했던가.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진솔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치열하지 못한 사유(思惟)로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만 지껄인 자신을 돌아본다. 작은 결점이 크게 보여 친분에 금을 그었거나 너무 많은 것, 완벽함을 기대하다 실망과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전화라도 해야겠다. 처음으로 오카리나 소리에 반했던 그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작지만 나만의 소박한 소리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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