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이 풍경의 덫에 걸려 풍경과 연애를 하나싶더니 여행길에 바람이 나버렸단다. 평소 수줍음 많고 차분차분한 시인이 '바람'이 났다고 하니,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박성우 시인(33)의 여행 일기 '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중앙M&B 펴냄)'. 나고 자라고 아버지를 그 땅에 모신 정읍을 시작으로 이웃 마을로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전라도 근방을 산책하듯 다녔다.
3년간의 여행 단상들을 한 권으로 묶은 이 책에는 그가 보낸 연애편지 같은 서른 세장의 여행기가 실려있다. 남원 광한루원·전주 동물원·김제 금산사·부안 내소사·정읍 내장산 등 깊은 곳에 숨겨진 곳도 아니고 한참을 가야할 먼 곳도 아니지만, 시인의 짧은 글로 그 곳의 풍경들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이미 한 번 다녀온 곳이라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감상에 괜시리 샘이나 '다시 한번 가봐야지'하고 마음 먹게 된다. 마치 내가 흘리고 온 풍경의 소중한 것들을 시인이 주섬주섬 담아온 것 같은 마음에서다.
곰의 형상을 닮은 웅포의 옛 선착장에 서서 '혓바닥에 올려진 나를 곰이 삼켰는지 나는 온데간데 없고 쓸쓸함만 뼈다귀처럼 뱉어져 있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말의 두 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마이산은 치부를 드러내고 누운 여자의 봉긋한 가슴 같다. 염전이 된 부드럽고 관능적이었던 개펄은 억척스러운 가장이 된 자상하고 부드러웠던 어머니 모습이고, 아버지 산소 앞에 놓았던 자신의 첫 시집에 피어난 붉은 곰팡이들은 붉은 꽃이라며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기도 한다.
"쉽게 말을 못 붙이는 성격 탓에 물어보면 쉬운 길도 혼자 헤매며 고생한 적이 많았다”는 그는 사실 책 제목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말이 아까워 아직 자신의 시에서도 못 쓰고 있는데, '바람'이라니.
또다시 여행기를 펴낼지는 미지수지만, 앞으로 시인의 여행은 '정착'의 의미를 안고있는 '섬'으로 이어진다.
책 한 쪽 한 쪽을 넘길 때마다 짭짤한 바다 바람이, 향긋한 꽃내음이, 텁텁한 막걸리 맛이 전해진다. 사각 프레임 안에 여행지의 풍경들도 가득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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