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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천연염색으로 사계절을 나는 공예가 천성순씨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에 있는 공방 ‘예사랑’. 이름도 예쁜 이 공방은 천연염색으로 사계절을 나는 공예가 천성순씨(42)의 작업 공간이자, 누구에게라도 열려있는 전시장이다. 허름한 슬레트 지붕에 황토벽의 단층 건물, 널찍한 마당이 전부지만 세상의 신비스러움을 안고 있는 온갖 빛깔들이 이곳에서 생명을 얻는다.

 

예사랑은 전주의 반경을 벗어나 서울의 인사동까지 이름나있는 공방이다. 당초에는 한지상품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천연염색 상품들이 더 이름을 빛낸다. 천연염색에 눈길 돌리지 않던 시절부터 온갖 풀과 꽃과 나무를 대상으로 염색을 시도해온 천씨가 철저하게 체득해 얻어낸 천연염색 상품들은 소박함 속의 아름다움이 생명이다.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것을 돌려주는 것, 그것이 천연염색의 의미예요. 자연으로부터 얻어낸 온갖 소재들이 아름다운 빛깔을 얻어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동반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 설레이는 일입니다.”

 

염색에 눈을 뜬지 10여년. 스승은 따로 없다. 염색에 관한 자료를 찾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그는 염색 기법을 익히기 위해 옛 책과 자료를 모으고 발품팔아가며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으나 또한 쉬이 지치지 않았던 것은 그의 곁에 늘 든든한 동료가 있었던 덕분이다. 남편 류명상씨. 자연에 심취해 자연과 하나된 삶을 꿈꾸었던 남편은 3년전 세상을 떴다. 깊어진 병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남편은 천연염색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남편은 스스로 익히고 얻은 기법을 신뢰했어요. 천연염색의 생명은 약초를 제대로 감별하는 좋은 한의사처럼 풀의 약성을 가려내는 능력에 있다고 확신했죠.”

 

쪽이나 잇꽃, 치자, 황련, 감 등 친숙한 소재부터 이름 생소한 풀과 나무와 꽃은 모두 그의 실험대상이다. 염색대체물을 탐구하고 개발해냈던 남편의 고집스런 작업이 모두 그에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그의 천연염색은 특별하다. 많은 공예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바래지는 특성을 천연염색의 결점으로 꼽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들지만 그는 “바래가는 빛깔의 정체야말로 자연의 힘이다”고 말한다.

 

모든 식물이 염색의 소재지만 사시사철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은 황토. 예사랑의 천연염색 주종목 역시 황토염색에 의한 생활소품들이다.

 

일찌감치부터 남편과 머리 맞대고 개발해낸 상품 수십종. 감물들인 우리옷이나 누구나 탐낼만한 생활용품들, 장식품들은 쓰임새에서 뿐 아니라 섬세한 바느질 공력까지 더해져 상품의 격을 한껏 높인다. 예사랑의 천연염색 상품은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추세로 보자면 천연염색상품 대중화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천연염색에 생을 걸었던 남편이 앞서간 지금, 천씨는 혼자지만 예사랑은 변한 것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들고나는 손님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녹차 향도 그대로다. 222-7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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