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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디지털의 개입]디지털, 걸음마부터 달리기까지

 

한 장의 사진은 즐거운 추억을 안겨준다. 하지만 모처럼의 가족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필름이 감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거나, 목 잘리고, 팔 잘리고, 얼굴이 새까맣게 나오는 사진들을 확인할 때면 사진 속 인물이나 셔터를 누른 사람 모두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두운 밤 몰래 찍은 짝사랑하는 여인이 사진 속에서 붉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볼 때, 그 난처함은 크다….

 

광학 카메라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혁신적으로 해결한 것이 인터넷과 홈페이지가 유행하면서 휴대폰처럼 일상에 자리잡은 디지털 카메라다. 촬영한 사진을 액정으로 바로 볼 수 있어 실수가 적다. 디지털 캠코더도 필수품이 됐다. 선명한 화질과 음질, 다양한 채널이 매력인 디지털TV는 비싼 가격에 아직 대중화되진 않았지만, 신혼 부부들이 꼭 챙기는 혼수다.

 

디지털 바람이 거세다. 디지털이 안겨준 파격적인 매력 때문이다. 디지털에 푹 빠진 이들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보자.

 

● 디지털, 걸음마부터 달음질까지 ‘한걸음에’

 

“부안 촛불시위 현장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도구는 디지털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직접 전하는 한마디 말과 표정은 어떤 훌륭한 문장보다 의미가 있으니까요”

 

지난해 인터넷 대안신문 ‘참소리’를 통해 ‘방폐장’으로 나날이 변해 가는 부안 군민들의 일상을 전한 김현상씨(33·참소리 취재팀장). 그곳에서 몇 개월 동안 상주하며 지냈던 그의 무기는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였다.

 

“수많은 조건과 환경에 좌우되는 필름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죠. 쉽게 담을 수 있고, 빨리 편집할 수 있고, 전송할 수 있죠.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촛불 시위현장에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디지털 매체를 접한 건 불과 2년 전. 친구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시작했다. 컴퓨터를 전공해서인지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다 디지털을 주로 사용하는 직업인이 됐다.

 

“찍은 내용을 곧 확인해드리니까 더 친근해지고, 그분들의 생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죠. 급박한 순간이었지만, 다시 찍자는 농담도 하시고 옷매무새나 머리 모양새를 다듬는다거나 하는 연출도 있었구요”

 

현장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중요한 장면을 찍으려 할 때 배터리가 떨어지거나, 저장용량이 꽉 찼을 때다. 주변에 컴퓨터가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았던 환경에서 그는 오히려 디지털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정현씨(36·전주환경운동연합 기획팀장)는 “캠코더에 담은 동영상을 마음껏 서버에 올릴 수 없는 것”을 가장 아쉬워한다.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려면 꽤 큰 용량의 서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 혼자 보기 위해서 찍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아서 오히려 디지털 작업이 재미가 없어질 때도 있습니다”

 

디지털 캠코더를 손에 쥔 이유는 다큐 등 영상물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디지털은 장점이 많은 매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전과 물욕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TV 등 매체의 시청자 참여코너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80년대 70만원대 사진기를 구입할 정도로 필름 사진 매니아였던 황혜성씨(43·군산기계공고 교사)는 고급형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고 있다.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평가하고, 게다가 편집까지 가능한 기능”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필름과 디지털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이미지 전송이 가능한 디지털의 유혹은 참기 힘들죠”

 

지난해 첫 아이를 영상에 담을 욕심으로 무작정 캠코더를 구입한 박민수씨(32·자영업)는 아이의 성장과정보다 주변의 풍경을 더 많이 기록하게 됐다.

 

“디지털은 찍는 사람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찍을수록 디지털뿐 아니라 찍는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더 많아지고, 뭔지 모를 자신감도 생기고…”

 

올해 그의 계획은 편집과정을 본격적으로 배워, 다큐멘터리에 도전하는 일이다.

 

최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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