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 발발 훨씬 전, 나라 전역에는 금서들이 은밀히 유통되고 있었다. 국가와 종교 권력 양쪽으로부터 핍박받던 금서들은 ‘철학서적’이란 암호로 지칭됐고, 이 은밀한 유통망 최전선에 ‘대학생의 어머니’라 불리던 이들이 있었다. 잡혔다 하면 ‘바스티유’행이나 갤리선의 노예가 될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대학생들에게 ‘철학서적’을 유포한 이들. ‘책과 혁명’을 쓴 로버트 단턴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은 이들에 의한 금서의 유통과 그에 따른 혁명적 여론의 조성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했다.
불과 20여년 전, 이 나라의 풍경이 그와 다르지 않았다. 금지된 지식에 목마른 자들에게 언제 폐쇄될지 모를 비상구처럼 아찔한 이름, ‘사회과학 서점’.
어찌 80년대가 최루탄과 화염병만의 시대였겠는가, 80년대는 엄연히 ‘책의 시대’였다. ‘책’을 열망했고, ‘책’을 금제하려 했다.
새날서점.
80년대, 우리에게 그곳은 열망과 금제 사이의 최전선이며 또한 보급기지였다. 우리들은 ‘새날’을 통해 알고 알리고 결집하였으니, ‘새날’은 80년대 전북의 ‘마이크로미디어’이기도 했다. ‘매스미디어’가 우리에게 환멸과 체념을 강제할 때, ‘새날’은 우리에게 희망의 연대를 꿈꾸게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그때 우리는 ‘새날서점의 아이들’이었다.
그 서점의 주인이 박배엽 형이었다. 앞선 표현을 반복하자면, 형은 ‘대학생들의 어머니’였다. 우리는 새날서점을 통해 끊임없이 수유 받았고, 양육되었다.
‘새날’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새날’이라 명명했을 간판. 존재해야 하는 당위와 그럼에도 부재하는 것에 대한 절망과 분노, 하여 더욱 커지는 열망의 레토릭을 난 ‘새날서점’이란 간판을 통해 배웠고, ‘백두산 안 갑니다’라는 시를 통해 레토릭을 넘어선 불꽃 같은 시대정신을 보았다. 언제였던가, ‘프랑스혁명사’를 손에 쥐어주었던 형이 ‘프랑스문학사’를 건네줬던 때가. ‘혁명’과 ‘문학’ 사이의 친연성과 긴장에 대해 배엽형만큼 뜨겁고 냉철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를 다시 또 만날 날이 있을까?
시인은 많되, 시인들의 사표가 되는 시인이 드문 시대. 박배엽이란 조타수가 있어, 지금의 ‘전북작가회의’는 어둠의 바다를 항행하였다. 안도현 시인 표현처럼 우리가 누군가에게 ‘빚진 목숨’이고,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 삶이라면, 형은 우리의 배경이었으며 작가회의 또한 형에게 갚지 못한 부채가 분명히 있다.
감히 장담컨대, 형만큼 크고 밝고 붉은 이도 드물었다.
미망의 더께를 이기지 못하는 눈꺼풀을 가진 우리들에게 배엽 형의 부리부리한 두 눈은 늘 경외의 대상이었고, 삶의 여러 경계를 훌쩍훌쩍 넘나드는 형의 큰 키는 키 작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도저한 높이,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형은 붉은 가슴 뛰는 피였다. 그 붉은 마음이 형을 80년대에 마지막까지 잔류하게 하였을 것이고, 백두대간 종주와 안데스를 꿈꾸며 자일을 꾸리던 산꾼을 주저앉혔을 것이다.
그 뜨겁고 밝은 것이 형 내부의 습기를 일찍 거둔 모양, 형은 언제부턴가 바짝 마른 장작이 되어 완전 연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았다.
문득, 형이 즐겨 입던 푸른 옷이 떠오른다. 날근날근해졌으나 영원히 바래지 않을 것 같은 그 푸른 빛… 이제 생각하니, 그건 수의(囚衣)의 빛깔이었던가, 한 시대에 스스로 저당 잡힌 영혼의 푸른 멍이 옷가지에 배어났던 것인가?
그런 형이 이제 막 우리 곁을 떠났다. 서점 주인이며 시인이고 산꾼이며 요기였던 한 사내가 이제 책은 너희가 직접 고르라고, 시는 삶의 마지막 결기로 쓰는 것이니, 이제 백두산과 안데스로 훨훨 떠날 테니 사람의 마을은 너희들이 더 지키라고, 이깟 육신쯤은 벗어놓고 가겠노라 굳게 다문 입으로 말하고 있다.
아아…! 한 세월, ‘뜨겁던 그 젊은 시절’이 이제 우리를 떠나고 있다, 이제 다 태웠단다. 더 태울 것이 없단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생의 인연의 시간이 이만큼이란다.
언젠가 우리 모두 소멸할 운명에 처하기에, 불멸의 희망은 뿌우연 습기와 함께 오는 것.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난다, 아니 참지 않겠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 물에 젖어 불완전 연소를 하는 장작이 불구덩 속에서 오래 버틴다, 눈물은 당연하다.
산다는 게 견디는 일이라면, 우리는 이제 눈물을 견뎌야 하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과 시간을 견뎌야 한다. 추억할 수 있는 한, 서점 주인이며 시인이고 산꾼이고 요기였던 한 사내를 잊지 않기 위하여, 우리 ‘새날서점의 아이들’은 형이 병상에서 보여준 그 결기를 애써 흉내내며 살아갈 것이다. 오늘이 그때 고대하던 ‘새날’인지는 아직도 의심스러우나, ‘새날’이 먼저 예언자의 생명부터 요구하며 도래하는 것이라면, 그래… 우리는 여기 끝끝내 살아야겠다.
그래서 어쩌면 배엽 형은 행복할지 모른다고, 남은 이들끼리 위안해본다. 동시대인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선의와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지복을 누구나 누리는 것은 아니잖은가.
/김병용(소설가·백제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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