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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전북문화 젊음과 희망]소리꾼 임현빈씨

남원시립국악단 단원인 임현빈씨. ([email protected])

 

"소리는 가르쳐서 뭐해. 왜정 땐 엔카가 판을 치더니, 해방이 되고 나니까 양놈들 노랫소리가 판을 치고 있어. 한물간 소리 배워봤자 배나 곯지…” 영화 '서편제'(감독 임권택)에서 '소리'를 고집하는 유봉을 향해 혁필화가가 내뱉는 말이다. '양놈들 노래'가 고래등같은 기와집의 호사라면 '소리'는 여전히 초가의 쓸쓸함을 안고 있다.

 

하지만 2004년에도 그 허전함을 지키려는 고집쟁이들은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예전 선생님들처럼 '∼쟁이'가 되고 싶다”고, "내 소리가 '귀중한 소리'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소리꾼 임현빈씨(30·남원시립국악단 단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풍부한 성량, 시원한 소리가 돋보이는 그는 "판소리·고수·무용·연기까지 모든 장르를 소화해내는 국악계 만능 엔터테이너”로 통한다. 그 중 북을 다루는 실력은 명고수 부럽지 않다. "고수가 되기 위해 소리를 시작”한 그의 내력을 듣고 보면 그의 북소리는 더 정겹다.

 

"중학교 때 공연장에서 판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소리보다 북장단에 더 매료됐어요. 원래 타악을 좋아했거든요. 두드리는 거. 두드리면서 박자를 맞추고, 그 속에서 리듬을 찾는, 그런 거요”

 

현빈씨는 광주예고에 입학하면서부터 소리를 시작했다. 북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어려워서였지만 국악인 한해주씨의 "목 구성이 괜찮다”는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소리꾼이나 고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의 꿈은 개그맨이었다.

 

서울예술대 국악과를 졸업했지만 그는 대학 개그동아리에 대한 기억이 더 강하다. 그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의 '개그 쇼'에서 동아리 선배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 전라도향우회 활동을 함께 했던 개그맨 양원경, 군대에서 만난 문천식과 공연했던 '위문열차'는 모두 소중한 기억이다.

 

개그맨의 포부를 밝힌 그 날, 아들이 소리꾼이 되기를 원했던 부모님은 고향 해남에서 한 걸음에 상경했다. 일제강점기의 뛰어난 명창인 임방울과 한 집안이면서 이난초 명창의 외조카로 '판소리 명가' 출신인 그에게 부모의 기대는 컸다. 부모님이 서울로 오시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꽤 유능한 개그맨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졸업과 함께 방황이 이어졌지만 우연히 남원시립국악단의 창극 '흥부전'(1998)에 참여하며, 이듬해 정식 단원이 됐다. 고교 3학년 때인 1993년 제1회 흥부제 판소리대회 장원이나 2000년 동아콩쿠르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거친 검증도 한 몫했다. 2001년에는 창극 '춘향전'에 이몽룡 역을 맡아 북녘 땅에서 공연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정이 가는 작품은 남원과 전주에서 호평 받았던 창작창극 '만복사저포기'다. 이 공연을 통해 '무대와 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창극을 하면서 부족한 것이 많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기회가 되면 연극단체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습니다”

 

성우향·이난초를 사사한 그는 "평생을 배워도 다 못 배울 것 같다”는 도립국악원 창극단 송재영 부단장과 남원시립국악단 상임연출 오진욱씨를 통해 소리꾼의 길(道)과 무대의 예(禮)를 익히며 더욱 단련되고 있는 중이다.

 

"남원시립에서 하는 작품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지만, 올해는 소리에 더 전념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명창대회에도 나가보고 싶어요”

 

지난해 유네스코는 판소리의 소멸은 한민족의 민족적 특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판소리를 가꾸고 지키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몫. 그래서 우리 소리의 생명줄 한 복판에 서 있는 현빈씨의 어깨는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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