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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한승헌 이사장

 

“기념사업은 매듭이 없습니다. 다행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지난 10년여동안 조직과 사업, 재정 등에서 아주 건강하게 성장해 왔고, 앞으로 지속 성장시켜줄 적임자가 나타났습니다. 또 동학농민혁명군 참여자의 명예를 회복해 주기 위한 특별법도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했지 않습니까. 아쉽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납니다”

 

지난 1993년부터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이끌어온 한승헌 이사장.

 

동학농민혁명군의 명예회복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동분서주하며 지난 10년을 훌쩍 뛰어온 한 이사장으로부터 동학농민혁명의 의미와 이임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10년 재임 동안의 일들에 대한 소회가 깊을 것 같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10년 동안이나 이사장 자리를 맡은 것은 잘 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재임하면서 ‘동학란’으로 불온시 되던 농민혁명에 대한 사회적 평가나 인식을 바로 잡아가면서 이루어온 크고 작은 일들은 보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일해온 임원과 회원 그리고 각계 인사들의 덕분이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후원자들의 지원과 협찬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두루 감사한 마음입니다.

 

-기념사업회에 참여하게 된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요.

 

△1992년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임의단체로 출범할 때 축사를 하러 갔는데, 그게 인연이 됐지요. 그 후 1993년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사단법인체로 발족하면서 본의 아니게 이사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이름만 빌려주면 되는 명예직으로 알았는데, 막상 취임하고 나서 책임을 맡게 되니 무거운 짐이 지워져서 힘겨웠습니다.

 

 

-힘들었겠지만 보람도 많았을텐데요.

 

△기념사업을 착안하고 집행하는 일에는 이사와 운영위원들의 창의와 노고가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념사업단체 중에서는 보기 드물만큼 연중 상근체제를 유지하며 각종 행사와 사업을 계속해 올 수 있었지요.

 

1994년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을 맞아 열린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 기념행사’를 비롯해 일본 북해도 대학에 90년동안이나 방치돼 있던 농민군지도자 유해의 봉환(1996년), 전봉준장군의 삶을 다룬 음악극 ‘천명(天命)’의 전주 광주 공연 유치(1999),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개최했던 ‘한·중·일 국제학술회의’(2001년)는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힘겨웠던 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9일 통과된 동학농민군의 명예회복을 위한 입법 추진을 비롯 농민혁명 관련 저술 및 자료의 간행, 전주역사박물관의 수탁 운영, 그리고 몇가지 연례행사도 꼽을 수 있는 사업이지요.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으실텐데요.

 

△물론입니다. 우선 회원 확장 등으로 운동·사업의 저변을 좀 더 넓혀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그러지못했습니다. 비슷한 연상에서 기념사업 전국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점, 무명농민군의 묘역조성을 마무리하지 못한 점 등이 특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올해 계획중인 북해도에서 봉환한 동학농민군 묘역 조성은 의미있는 사업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농민군 관련 묘는 모두가 허묘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체 있는 유일한 묘가 되는 셈이지요.

 

 

-동학농민혁명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배어있는 항거정신은 지배와 수탈의 대상이던 민중이 스스로 역사변혁의 주체로 격상하고자 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갑오년 농민혁명이 폐정과 부패의 척결을 내세운 점은 오늘날의 국정개혁과 딱 맞아 떨어지고, 청·일 외세의 간섭과 침입을 격퇴하고자 한 점은 사대배격과 민족자주, 그리고 점령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한 것은 지방자치 등 1백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의 국가적 과제와 놀랍게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농민혁명을 바로 알고, 그 ‘자주·개혁·자치’의 정신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임을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책임있는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는 게 물러가는 이유라면 이유지요. 1인 장기집권을 그토록 비난하던 내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동안이나 ‘장기집권’했으니 늦은 셈이지요.

 

 

-지역 일과 관련해 맡고 있는 일이 또 있으시지요.

 

△전북대 발전 후원회장직도 이미 작년 말에 사임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임기도 오는 4월이면 끝납니다. 이제 나의 시간과 관심과 힘의 분산을 지양하고, 나 자신의 일에 좀 더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고향길이 전에 비해서는 뜸해질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일들이 있으신가요.

 

△내 삶을 되돌아보며 정리를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써온 글과 책을 가지고 전집이나 선집을 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담당했던 사건의 ‘사건실록’과 ‘변론전집’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 역사 분야에서 자부심을 찾아나가는 것도 지역발전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런 분야에 힘이 되고 싶습니다. 새만금사업, 방폐장 유치 관련 등 여러 난제들이 잘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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