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책이 창세기이다. 창세기는 인간의 궁극에 관한 질문들에 대한 종교적 해답이다. 사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우주와 자연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등의 원초적 질문들에 대하여 ‘하나님이라는 절대자가 창조했다’는 답을 한다. 그리고 더 사람에게 절실하면서도 현실적인 ‘사람의 삶이 왜 이렇게 고달픈가? 사람은 왜 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나?’라는 질문에도 답을 준다. 아마 세상에 있는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는 것만큼 많이 알려진 것도 드물 것이다. 이 창조 설화 중에 뱀(사단)이 사람을 꼬드길 때 하는 말에서 인간의 ‘죄’와 그로인한 ‘고통’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창세기 3장 5절에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처럼 되어서(be like God) ...’라는 구절을 보자.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소유한 하나님이 부러웠을까? 사단은 하나님과 같이(be like God) 되고자 하나님을 배반한 타락한 천사이다. 그 사단이 사람을 꼬인다.
너도 하나님 ‘처럼’될 수 있다고.. 하나님처럼 되는 것, 이것이 죄와 타락의 출발이다. 하나님 ‘처럼’ 되는 것은 또 다른 존재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는 필연적으로 절대선, 절대 진리인 하나님과 경쟁적 관계를 설정하게 되기 때문에 선(하나님)을 가장하지만 필연적으로 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진리이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하나님을 적대하게 되고, 그 삶이 고달픈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괴로운 삶(苦生)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또 다른 하나님이 되고자하는 ‘처럼’을 던져버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찾는 길이다. 하나님이 절대선이고, 나를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을 안다면 굳이 또 다른 하나님이 될 필요가 없다.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내안에(I in God, God in me) 있어 하나님과 온통 ‘함께’ 하는 삶이 죄와 그로인한 고생(苦生)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다. 내가 아는 한 기독교는 현재의 삶의 고통에 적응하며 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 속세로부터 벗어나는데 있다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해서 타락한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는 삶으로 되는 것 이것을 구원이라 한다.
그 구원받은 자들이 이제 이 고통의 세상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세상, 즉 ‘에덴’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산 사람이 있는가? 있다. 2000년 전의 예수라는 사나이가, 그의 제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역사를 진보시킨 수많은 영웅들, 그들이 또한 하나님과 ‘함께’ 살다 간 빛나는 인생들이다.
/양진규(전주새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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