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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서의 향기]조선시대 교육, 과거(1)

용진면 녹동리에 살던 소봉덕이 소학 고강 뒤 받은 고강단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email protected])

 

새벽부터 온 집안이 분주했다. 어머니는 첫 닭이 울자마자 아침을 준비하셨고, 아버지는 의관을 차려입고 책을 읽고 계셨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조심스럽게 들렸다. 마치 남에게 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듯 했다.

 

어젯 밤 난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소학(小學)을 배운 후 처음으로 치르는 고강(考講) 때문이었다. 사실 내 나이에 소학을 배운다는 것은 조금 창피스러운 일이었다. 나보다 몇 살은 적은 애들이 배우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비 하나 거느리지 못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땔나무도 해야 하고, 또 논일도 해야 했으므로 책 볼 시간을 낸다는 것은 좀체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기대를 하셨다.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마치 나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강을 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던 날, 미소를 띠시면서 “通의 성적을 받으면 떡을 해 주겠다”하시던 그 모습에서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집안 형편이 비록 어렵지만, 아버지는 그 약속을 분명 지키실 분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서당까지 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머릿속에는 어제 잠 한 숨 자지 못하고 외웠던 내용들이 온통 뒤엉켜 있었다. 길 옆 논에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박씨 아저씨께 인사조차 하지 못하였다.

 

서당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려 있고 당(堂) 위에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서당에 모인 동네 어르신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나와 같이 소학을 시험 보도록 되어 있는 아랫마을 귀복 아버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내 차례는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나는 소학 첫 권을 외워야 했고 또 그 뜻을 말하여야 했다.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내 귀에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긴장한 탓인지, 어제 외운 것들이 전혀 생각나지가 않았다. 그러나 숨을 크게 들이쉬자 이내 마음이 안정되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또박 또박 읊는 내 목소리에 아버님의 잔잔한 미소도 따라 춤을 추었다.

 

난 오늘의 시험에서 모두 “通”의 성적을 받았다. 고강을 마친 후 시험 범위를 적어 선생님께 드린 고강단자에 “通”이라는 글씨를 써 주시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같이 소학을 읽은 귀복이는 아쉽게도 “粗”의 성적을 받았다. 침작하게, 조금만 외웠었다면 “略”이라도 받았을 것이련만 조금은 아쉬웠다.

 

서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아침때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그 큰 팔자걸음도 오늘은 더욱 크게 보였다. 비록 뒤를 따라가느라 당신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나의 오늘 행동에 만족하실 것만은 분명했다. 어쩌면 나에 대한 당신의 기대가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넓은 들판에 늘어진 석양빛이 유난히 붉은 하루였다.

 

/송만오 (전주대 언어문화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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