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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서의 향기]조선시대 교지와 교첩(1)

1874년(고종 11) 全光斗의 조부 全宗鐸에게 주어진 추증교지, 전종탁을 通訓大夫 軍資監正으로 추증한다는 내용이다. ([email protected])

 

내가 고문서를 다루면서 알게 된 사람 가운데 전광두(全光斗)라는 분이 있었다. 그 분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한 지가 이미 일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그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이름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그가 받은 교지(敎旨) 때문이었다. 교지란 조선시대 때 4품관 이상의 고위관료에게 왕이 직접 내려주는 관직임명장이었다. 5품관 이하 관원에게, 그것도 왕이 아닌 담당부서에서 주는 교첩(敎牒)과는 격이 다른 것이었다.

 

전라도 진안현 마령면에 살던 전광두가 통훈대부 사헌부감찰(通訓大夫 司憲府監察)에 임명되었다는 교지를 받은 때는 1887년이었다. 통훈대부는 정 3품의 품계였으므로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 전광두가 이 교지를 받고 실제로 그 직을 수행하였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교지가 전광두에게 대단히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으리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때, 그러니까 전광두가 통훈대부로 사헌부 감찰에 제수(除授)되었을 때, 전광두에게는 몇 장의 교지가 더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전광두의 부(父)와 조(祖), 그리고 증조(曾祖)와 이들의 처에게 내려진 추증교지(追贈敎旨)였다. 당시 전광두의 조부 전종택(全宗鐸)은 통훈대부 군자감정(通訓大夫 軍資監正)에 추증되었는데, 교지 마지막을 보면, '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 全光斗曾祖考 依法典追贈'라는 표현이 있다. 한마디로 손자를 잘 둔 탓에, 손자가 출세한 덕으로 조상이 덕을 본 셈이다. 생전에 아무런 관직을 지니지도 못하고,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 그저 '현고학생(顯考學生)'이라는 표현 밖에 쓰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떳떳하게 품계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출세를 해도 이만 저만한 출세가 아니었던 셈이다. 자식 덕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것이다.

 

일년 전 전광두와 그의 선대 어른들에게 주어진 몇 장의 교지를 보았을 때, 내 머리 속에는 전광두가 이 교지들을 받았을 때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그는 아마도 이 교지들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고급 비단에 보관하여 집안 대대로의 가보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선대 어른들에게 주어진 교지는, 좋은 날을 택하여 그 선대 어른들이 편히 쉬고 계시는 곳에 찾아가 정성껏 마련한 제수(祭需)와 함께 펼쳐놓고, 이 모든 영광은 조상의 음덕에서 비롯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그것이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도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조상의 음덕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것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생각은 올바르지 않다. 조상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후손들이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따라서 조상을 잘 섬기는 사람은 언젠가 그 음덕을 입게 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전광두의 교지는 이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송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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