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를 부는 할아버지』를 읽고
나는 남들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권하는 권장도서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 반 현수네 어머니께서 기증해주신 책이다. 나는 선생님이 소개하자마자 『하모니카를 부는 할아버지』라는 제목의 책을 골랐다. 제목을 보니 외할아버지가 생각나서 먼저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영재는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다리도 없지만 항상 명랑하고 밝게 산다. 영재는 혼자 지내면서 그림도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리기도 한다. 또 반지하 방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를 보기도 하고 뒷집에 있는 나무를 보기도 하고 가끔씩 들리는 하모니카 소리와 노래도 듣는다.
이렇게 명랑한 영재에게 그늘이 찾아온다. 돈 때문에 셋방에서 쫓겨날 상황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항상 보던 뒷집 할아버지께서 자신은 2층을 쓰니까 1층을 쓰라고 하신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것이다.
내가 만약 책 속의 영재였다면 할아버지가 엄해서 좀 무서웠을 것이다.
영재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가끔 들었던 하모니카를 부는 아이가 생각났다. 2층을 가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고 2층에 올라갔다. 내심 무서웠을 것이다. 2층에서 나뭇조각들을 봤는데 꼭 사람들의 영혼을 봉인해놓은 것 같았다. 무서워서 허둥지둥 내려가려고 했는데 나뭇조각의 모서리에 찍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치료를 받았다. 내가 경험했는데 상당히 아프다.
영재는 TV를 보다가 고양이를 보니 문득 야옹이가 생각났다. 영재의 절친한 친구인 야옹이. 이사와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좋은 일은 연속해서 일어나나 보다. 야옹이도 찾고 야옹이가 새끼도 낳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선생님이 된 것이다.
내막은 어머니가 장애인인 영재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니까 할아버지가 가르치게 되었다. 자신이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하모니카는 할아버지가 딸을 잃고 슬퍼서 불은 것이고, 영재가 날린 편지가 할아버지 집으로 날아가서 영재네 일을 잘 알게 된 것이었다. 얼마 후 새 식구가 생겼다. 끝순이 할머니다. 딸 좀 그만 낳으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데 생명체에게 그 것도 사람에게 이상한 이름을 붙이다니 참 희한하다.
하지만 끝순이 할머니는 할아버지만 만나면 싸운다. 그런데 이런 싸움이 오히려 할아버지를 자극하여 할아버지는 삶에 의욕 갖는다.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를 한다. 그리고 영재는 날개를 조금 다친 천사(장애우)들과 천사의 집에서 기숙사생활을 시작하기로 약속하고 집에서 이별 파티를 한다. 그 자리에서 그 동안 모두(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야옹이, 야옹이 새끼, 영재)같이 사는 것을 빌었는데 아버지께서 도와 주셔서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전한다.
『하모니카를 부는 할아버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보는 읽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켜주는 책이다.
/전주효림초등학교 6학년 이기호
■ 글을 읽고 ■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어린 시절에 읽은 한 권의 좋은 책은 평생동안 꺼지지 않는 삶의 등불이 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게임처럼 보는 것만, 가벼운 것만 찾는다고 어른들은 걱정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책 읽는 기쁨을 벌써 깨친 것 같다. 이런 감동이 쌓이고 쌓여 훗날 한가락하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쓴 솜씨도 뛰어나다.
■어린이 시■
기분 좋은 일
고창무장초등학교 3학년 김시연
학교에서 기분 좋은 일
체육시간에 노는 것
청솔반과 함께 노는 것
경기시작
가슴이 쿵덕쿵덕
영차영차
이겨라 이겨라
우리반 전체
만세만세
너 짱이다.
너도너도
이렇게 칭찬하니
기분이 좋다
■ 시를 읽고 ■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 체육시간이다. 아이들은 체육시간을 통해서 사회성과 공동체의식을 키워간다.
경기에서 이기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시연이의 시를 읽으니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는 봄 산이 떠오르고 그 만세소리가 들려와 나까지 절로 힘이 난다.
시작에서 끝까지 곁가지 없는 가지런한 정리가 우수하다.
/김종필(아동문학가
아버지
박미화(백산고 2년)
가을 들녘은 아버지의 땀방울이다.
아버지 농사일의 겨운 신음소리도 가을이었고
담배 연기 속에 묻어나는 허연 김은 아버지의 백발이 된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보리 씨앗을 땅에 묻는다.
아버지는 저 빈들을 바라보시며
저 곳이 가득 채워질 그 날을 생각하신다.
글을 읽고>
농사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농부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 시는 땅의 정직함을 믿는 농부인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자식의 안스러움이 잘 배어 있다.
신음 소리 절로 나고 흰머리 늘게 하는 농촌의 현실이지만 쓰러지지 않고 보리처럼 다시 일어나리 라는 의지를 갖게 하는 미더움을 보여준다. 말의 쓰임에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다.
[산문]하던 짓도 멍석 깔면 않는다
- 반순이(우석여자고등학교 3학년)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메뉴」의 도입부는 적잖이 충격적이다. 여느 일본 소설들이 종종 그러하듯 그녀의 소설에도 '죽음'이 등장한다. 주인공 도키노리는 다섯 살 때 커튼 레일에 목을 매고 죽은 엄마를 보며 요구르트와 빵을 먹는다. 그건 그가 다섯 살 바기 어린애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요구르트 먹기를 강요하던 엄마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등줄기에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팻말이 세워진 잔디밭을 슬그머니 밟아보는 그런 일 말이다. 강요에 대한 반작용 말이다.
지금의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몇 가지씩의 강요를 받고 있다. 작게는 바르게 걸어라, 편식하지 말아라, 공부해라, 이런 것에서부터 크게는,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등등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중요한 것들임에도 우리는 그것들은 종종 무시하곤 한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도키노리처럼 강요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린 알고 있다. 아무리 밟지 말라고 쓰여 있어도 누군가는 밟고, 아무리 지키라고 외쳐도 누군가는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지켜지지도 않을 것을 모두가 지켜야 하는 양 강요하기보다는 권유하는 방식으로 의식과 표현을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떨까. 비약일지 모르나 우리 주변에서 도키노리 같은 녀석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글을 읽고 >
가르침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아이들의 자유의지를 눌러왔던가? 얼마나 많이 자율능력을 눌러왔던가? "요구르트 먹기를 강요하던 엄마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는 역설은 얼마나 시사적인가?
금줄이 걷힌 자리에서 '자유롭게' 삶의 그물을 짜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흐뭇한 얼굴의 나를 떠올려 보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보람이다.
/오창렬(시인)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