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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주보기]감정과 주의

 

웃음은 입에서 흘러나오고, 눈물은 눈에서 굴러 떨어진다. 화는 머리카락 끝으로 솟구친다. 그러나 희로애락애오욕의 일곱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안면근육의 선택과 긴장에 따라 오묘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감정은 잘 다스려서 넘치지 말도록 주의해야 할 수행의 대상이었다.

 

일정한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원칙이나 이념을 뜻하는 '주의'는 이성의 판단을 근거로 한다. 정치, 학문, 종교 등의 분야에 등장하는 주의는 종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주의로 끝나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하나 예로 들라면 나는 민주주의를 꼽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주의가 되었던지 주의는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까닭에 감각적 판단을 배제한다. 주의는 감정과 전혀 별개이다. 감정과 주의를 혼동하는 것은 중앙선을 무시하고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두 단어에 지역이라는 군더더기가 달라붙는 순간, 양자는 하나가 된다. 갑자기 일방통행로가 되어 버린다. 실재보다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상상의 괴물이, 지역감정과 지역주의라는 괴물이, 출현하는 것이다.

 

요즈음 지역주의라는 용어가 지역감정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것도 미심쩍다. 지역감정이 지역주의가 되면 격이 높아 보이기라도 한단 말인가? 지역감정과 지역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지역차별감정이고 지역이기주의이다. 이러한 이기적 차별의 피해자였던 호남사람, 아니 전라도사람의 대책은 지금껏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감정과 이성의 미분화 단계인지 아니면 두 가지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한국어의 마음은 생각, 관심, 기분, 의지, 결심, 정신, 의식 등을 대신하여 두루 쓰일 수 있다. 감정과 주의가 다 마음에서 나온다고 지역주의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역차별감정과 지역이기주의를 만들어 내는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이 없지 않다. 서울을 빼면 전국이 모두 지방이라는 말도 거짓이다. 지방과 지방 사이에도 엄연히 순서가 존재했다.

 

혈연과 학연이든 성과 계급이든 차별의 구조는 차별하는 사람과 차별받는 사람이 함께 없애야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적어도 지연에 바탕을 둔 이기심은 이제 임종을 맞았다고 판단한다. 지역감정과 지역주의의 수혜자들이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역사의 흐름이 여기까지 왔다.

 

감정과 주의를 벗겨내고 지역을 들여다보면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기적 탐욕의 차별이 횡행하던 시절에도 지역의 시인들은 그런 흔적을 새겨두었다. 김용택의 시에서 섬진강변의 진메마을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박남준의 흰 부추꽃은 모악산 자락이 아니면 피어날 수 없었다. 오수에서 산서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안도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차비가 아까울 것이다. 충청도에 건너가 사는 유용주를 만났을 때 뜸봉샘의 안부를 전해 보라. 남원을 거쳐 지리산에 갈 때마다 나는 손바닥으로 차양을 하고 복효근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 시인들의 지역 사랑에는 손톱만큼도 사특한 생각이 없다.

 

/정철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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